평화를 바란다면 우선 기대할 것이 없어야 한다. 기대할 것, 즉 기댈 곳이 없으면 절로 평정심은 따라온다.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새벽녘에 금궤 덩이가 머리맡에 놓여 있기를 바라고, 방주를 지휘하는 노아처럼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만 선택해줄 것 같은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평정심은 이내 허물어진다. 일단 평정심을 유지하기만 하면 사물이나 상대에게 흔들림이 없게 된다. 그 무엇이 내 곁에 없어도 살 수 있고, 그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게 된다. 중심이 잡힌 그 마음이면 비로소 사물이나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상의 괴로움 대부분은 그 무엇이 내 곁에 없어서 그렇고,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그렇다. 모든 건 내 편협한 생각의 우물에서 비롯된다. 그 물은 깨끗하지도 향긋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내 우물만은 그럴 것이다, 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갇혀 있는 상태에서 열린 상태로 만드는 부단한 마음의 노력 그것이 곧 중심을 찾는 길이다. 중심이 잡히면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중심을 향하는 공부가 마음공부이다. 그것만 제대로 되면 사물 때문에 번잡할 일도 사람에게 흔들릴 일도 없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책이고 벌어지는 사태는 그의 선생이며 위대한 행동은 그의 웅변이다.` 매콜리가 한 말이다. 올 한해 내 마음이란 책에도 많은 선생이 다녀갔다. 숱한 선생이 다녀갔지만 아직 위대한 행동인 웅변의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터진 목으로 웅변이 되어 나오도록 하는 길, 그 마음의 중심 길에 닿기 위해 남은 날도 정진할 따름인 것.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