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앓거나 맘이 고달프면`이라는 저 전제는 오랜 경험에 비춰볼 때 조금 수정해도 좋겠다. 내 경우 단순히 몸이 아픈 것만으로는 구순포진이 생기지 않는다. 반드시 맘까지 아파야 입술이 부풀어 오르게 된다. 맘에 사무침이 있거나 괴로움이 스미면 육체적 피곤으로 연결되고 몸은 그것을 감지해 나쁜 신호를 작동한다.
“밀려오는 파도 말고 밀려나가는 파도가 힘이 세고 매듭 묶이는 일보다 매듭 풀리는 일이 더 유혹이라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 때로 휘청거리곤 하는 것이다. 그만 저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 그러다 그대와 함께 무너지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잠복되어 있는 헤르페스 균을 도발하는 저 마음의 괴로움을 `몰락의 에티카`에서 뽑은 이 말과 연결해본다. 담아야 하는데 멀리 밀려가고, 묶어야 하는데 쉽게 풀려버리는 게 사람 사는 일의 과정이다. 놓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리지도 못하는 그 틈새에 마음의 병이 서린다. 그게 `보통 사람의 보편적 정서`이다.
몸만 가벼이 아프면 한 사흘이면 족하지만 마음이 아프면 아무리 가벼운 증상이라도 몇 주는 헤매야 한다. 몸 가벼이 아픈 것은 아프지 않은 것과 같지만 마음 아픈 것에는 가벼움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누군가 부푼 입술로 나타나거든 저이는 몸이 피곤한 게 아니라 마음이 피로한 것이구나, 보아도 무방하다. 천형처럼 `나았다 도졌다`를 반복하는 입술 헤르페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