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메르시어의`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실은 동명제목의 영화를 먼저 봤다. 언제부턴가 영화와 원작이 있다면 영화부터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영화와 원작이 동시에 알려진 경우라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게 낫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작만한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에 실망하게 되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으면 둘 다 만족할 수 있다. 영화를 먼저 보면 등장인물이 축소되고, 주인공 심리가 덜 전달되고, 줄거리가 비약적 도약을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책을 읽기 전이기 때문에 영화의 약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뒤 영화를 보면 심리적 곤욕에 시달리게 된다.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 분위기나 섬세한 풍광 진득한 심리 묘사 등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경우도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본 건 잘한 일이었다. 영화와 책 둘 다 이기는 게임이 된 셈이다. 비 오는 날, 묘령의 여자가 남기고 간 빨간 코트와 책 한 권의 흔적을 찾아 무작정 리스본행 열차를 타게 된 남자. 시간여행의 형식을 빌려 타인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과 다양한 개별자의 고뇌를 만나게 된다.
예정에 없던 일탈을 감행하고픈 날들도 오는 게 삶이다. 용기 있는 자 미인을 얻고, 머뭇거리지 않는 자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 누구도 타자의 삶에 간섭할 수 없다. 우연의 매개물이 나타나 운명처럼 삶과 죽음의 의미를 캐묻거든 지체 말고 떠나 볼 일이다. 리스본이 꼭 목적지일 이유는 없다. 물론 영화나 책이 그 경유지가 되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