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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의미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1-04 02:01 게재일 2014-11-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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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원히 산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 우리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고, 놓치는 것도 없으며, 서두를 필요도 없다. …. 회복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수없이 많은 실수도 영원 앞에서는 무가 되고, 뭔가 후회한다는 것도 무의미해진다.”

파스칼 메르시어의`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실은 동명제목의 영화를 먼저 봤다. 언제부턴가 영화와 원작이 있다면 영화부터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영화와 원작이 동시에 알려진 경우라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게 낫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작만한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에 실망하게 되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으면 둘 다 만족할 수 있다. 영화를 먼저 보면 등장인물이 축소되고, 주인공 심리가 덜 전달되고, 줄거리가 비약적 도약을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책을 읽기 전이기 때문에 영화의 약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뒤 영화를 보면 심리적 곤욕에 시달리게 된다.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 분위기나 섬세한 풍광 진득한 심리 묘사 등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경우도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본 건 잘한 일이었다. 영화와 책 둘 다 이기는 게임이 된 셈이다. 비 오는 날, 묘령의 여자가 남기고 간 빨간 코트와 책 한 권의 흔적을 찾아 무작정 리스본행 열차를 타게 된 남자. 시간여행의 형식을 빌려 타인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과 다양한 개별자의 고뇌를 만나게 된다.

예정에 없던 일탈을 감행하고픈 날들도 오는 게 삶이다. 용기 있는 자 미인을 얻고, 머뭇거리지 않는 자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 누구도 타자의 삶에 간섭할 수 없다. 우연의 매개물이 나타나 운명처럼 삶과 죽음의 의미를 캐묻거든 지체 말고 떠나 볼 일이다. 리스본이 꼭 목적지일 이유는 없다. 물론 영화나 책이 그 경유지가 되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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