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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에 대한 추억

등록일 2014-10-02 02:01 게재일 2014-10-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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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미군은 전쟁 확대를 원치 않았다. 소련에 이어 분명 중국이 개입할 것이니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유엔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 2주 후 전군에 “38선에서 일단 진군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면 통일은 멀어진다는 것을 알고 “내가 이 나라 최고사령관이다. 나의 명령에 따라 진군하라!”는 명령서를 하달했다.

당시 동부전선 제3사단 23연대는 한국군만으로 편성된 부대였고, 대통령의 명령을 따라 38선을 넘어 진군했다. 우리 군이 최초로 38선을 넘은 이 날이 바로 10월 1일이다. 북진하던 국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1·4후퇴를 단행했고, 전선은 소강상태에 빠졌다가 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초대 대통령의 북진통일 여망은 무산됐지만, 통일염원을 담은 `국군의 날`은 제정되었다.

과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진 국군의 날 열병식과 시가 행진은 대단한 볼거리였다. 최신 무기들이 선보였고, 퍼레이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말쑥한 제복에 기관단총을 맨 여군들의 행진은 너무 보기 좋아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많은 여학생들이 여군 입대 지원서를 썼다. 사관생도들의 시가행진은 특별한 구경거리가 됐고, 사관학교 경쟁률이 항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91년 `국군의 날`은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10월에는 `노는 날`이 너무 많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한 조치라는 의견도 많았다. 당시 서울대 교수 출신인 조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광장을 갈아엎어 녹지공원으로 만들자 국군의 날 행사를 열 장소도 사라졌다. 그 후 충남 계룡시에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부대`가 형성돼 지금은 계룡대에서 국군의 날 행사를 하고 있으며, 이 날 대통령도 참석해 국군을 격려한다. 그러나 열병식만 할 뿐 시가행진은 없어서 반쪽짜리 행사가 돼버렸다.

지금은 국군의 날 행사가 `우리 군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민간과 군이 함께 펼치는 `문화축제`로 변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참여하고, 민·군 합창단이 군가를 합창하고, 특전사의 합동무술 시연과 조선시대 군복을 입은 무예인들이 전통무예를 선보인다. 3군 통합의장대의 시범, 군악대의 연주, 육군 헬기와 공군 전투기의 축하비행 등 올해는 10월 1일부터 5일까지 `지키는 힘, 누리는 평화`란 주제로 문화행사를 한다.

해병대의 도시 포항이 국군의 날을 `조용히` 넘긴 것은 서운한 일이다. 폭행사건 등으로 군의 사기가 바닥권인데, 이럴 때일수록 격려성 행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 올해가 청룡부대 월남파병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귀신잡는 해병의 위용과 남다른 단결력을 과시하는 행사를 해마다 거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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