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가 쓴 마지막 장편소설은 1950년 초에 발간한 `사랑의 동명왕`이다. 해모수와 유화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동부여를 떠난지 이태만에 고구려를 건설하는 위업을 세운 사람이 바로 동명왕 주몽이다.
하지만 삶은 무상하여 그 또한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왕위를 이을 아들 유리에게 마지막 유훈을 내리게 된다. 마흔을 넘기지 못한 나이였다.
그런데 이 `사랑의 동명왕`은 이광수에 있어서도 마지막 유언과 같은 작품이었다. 이광수 역시 일제 말기에 부역을 일삼은 죄인의 몸이었으나, 박두한 6·25 전쟁의 와중에서 1950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논문 때문에 이 작품을 되짚어보다 느낀 바 있어 그 문구들을 인용, 소개해 본다. 이 작품 마지막 장에서 동명왕이 유리에게 남기는 유훈은 이광수 자신이 이 땅의 위정자들에게 남겨놓고 싶은, 진심이 어린 말이었을 것이다.
-듣거라. 네 진실로 어리석은 줄을 알면 좋은 임금이 될 것이다. 임금은 몸소 일하는 자가 아니요, 사람을 골라 일을 시키는 자다. 네 마음대로 하면 나라를 잃을 것이요, 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좇으면 나라를 크고 힘있게 하리라.
-면전에서 감히 임금의 말을 거슬르는 자는 충성 있는 자요, 임금의 비위를 맞추어 아첨하는 자는 제 욕심을 채우려고 임금과 백성을 깍는 소인이니라.
-백성이 배곯고 헐벗지 않으면 나라의 힘이 있고, 백성이 임금과 그 신하들을 믿으면 나라의 힘이 있고, 군사가 죽기를 두려워 아니하고 장수를 잘 믿으면 나라의 힘이 있느니라. 요는 백성이 임금을 믿음에 있느니라.
-백성을 속이지 아니 하고, 백성의 것을 빼앗지 아니하고, 백성이 사랑하는 자를 상주고, 백성이 미워하는 자를 벌하면 백성이 믿느니라.
-백성은 제 욕심이 없이 저희를 위하는 자를 사랑하고 저희를 해하는 자를 미워하나니, 백성을 위하는 자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백성을 해치는 자에게 엄한 벌을 주면 백성이 믿느니라.
동명왕은 유리를 향한 당부의 말씀 끝에 자신과 고락을 같이 해온 신하들을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고언한다.
-너는 이 사람들을 존경하고 만사에 물어 하여라. 그러나 한 사람에게 오래 큰 권세를 맡기면 맡는 자는 교만한 마음이 나고 다른 사람들은 이를 시기하여서 편당과 알력이 생기나니, 조심조심하여라.
이 소설 끝에는 집필을 끝낸 시기가 적혀 있는데, 단기 4282년 12월 17일 석양 무렵이다. 서기력으로 따지면 1949년이고, 그렇게 해서 이 소설은 1950년 5월에 한성도서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 바로 다음달에 전대미문, 동족상잔의 전쟁이 발발한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인을 욕한다. 하지만 정치가 없이 어떻게 세상이 움직이랴. 세상과 사람들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정치이니, 이에서 무턱대고 고개 돌릴 수 없다. 아니,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주어야 한다.
예부터, 좋은 정치를 만나면 백성들이 눈에서 눈물을 씻어냈고 나쁜 정치 아래서는 고통과 절망을 면치 못했다. 저 끝 아메리카부터 또 다른 끝 이라크까지, 세상은 쇠와 구리가 끓는 것 같은 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하필 `사랑의 동명왕`이라 했을까? 동명왕은 큰 나라 고구려를 세운 임금이니 `사랑의 동명왕`아니라 `정복자 동명왕`이라고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힘보다 크고 강한 것이 바로 사랑이요, 자비다. 동명왕(東明王)이란 동쪽의 밝으신 왕이라는 뜻이고, 이때 이 `명`자는 해와 달을 합쳐서 글자를 만든다. 해와 달같이 밝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넓게 사랑하신 왕이었다는 뜻이다. 단군의 뜻을 이은 이 나라에서 사랑을 아는 밝음보다 위에 설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