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후배 뮤지션과 `새로운 도전`… 10월께 새앨범 발표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1970년대는 `아침이슬`로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억압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방도가 없었던 그 시절 청년들이 방황하는 마음의 거처로 삼은 것이 바로 이 노래니 말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노래는 험한 세상에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을어루만지고 있다. 어쩌면 `아침이슬`의 가장 커다란 힘은 노래의 정치성도, 역사성도 아닌 이와 같은 세월과 무관한 공감과 위로의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생명력의 근원에는 1970년 가장 막막한 상황에서 노래를 접하고 단숨에 사랑에 빠진 가수 양희은(62)이 있다. 그의 절실함이 바로 시대의 절실함과 맞닿은 셈이다.
“집안 형편이 무척 안좋았어요. 어머니 홀로 생계를 잇는 현실이 답답했죠. 언젠가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는 날이 과연 올까 생각했어요. 서러운 매일이었죠. 그러다 정식 발표 전 김민기 씨가 학교 축제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모습을 봤어요.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부분을 듣는 순간 노래와 사랑에 빠졌죠.”
양희은은 `아침이슬`과의 만남이 `인생의 행운`이라고도 했고, `운명의 활시위가 당겨진 순간`이라고도 정의했다. 이제와 `운명`과 `노력`의 선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이런 운명은 스스로 개척한 것이기도 하다.
“노래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었는데 김민기 씨가 공연을 위해 악보를 그렸다가 찢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배들 모임이 파하고 청소부 아저씨가 모임 장소를 청소할 때를 기다렸다가 찢긴 조각을 찾아내 보면서 연습했죠.(웃음) 이후 `내가 부르고싶다`하니 김민기 씨가 그러라 하셨어요.
활시위는 그의 힘으로 당겼지만 쏜 화살이 온전히 예상한 방향으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등굣길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며 그에게 `놀라운 행복`을 선사한 노래는이내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시위의 상징이 됐다.
그는 “유신 체제하 젊은 사람들이 마음속 마그마를 분출할 길이 없을 때 뭔가 통로가 된 것 같다”며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이 있지않나. 그걸 건드리고 터뜨려 노래가 사랑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되돌아봤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금지곡에 얽힌 사연도 그는 담담히 풀어냈다. 그의 노래 가운데 30여 곡이 금지곡 `신세`를 겪었는데 당초 `아침이슬`이 `건전가요`였다가 이듬해 일부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된 것은 유명하다.
그는 “공중파에서 못 부른 것은 당연하고 대학교 축제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누군가의 쪽지를 몇 차례 받아봤다”면서도 “그런데 오히려 금지해서 노래 인기가 더 커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짚었다.
양희은은 이어 “내가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이 있었고, 라이브 무대에서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대중과 소통할) 통로가 완전히 막혀 상심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갈수록 어두워지는 시대 현실은 그의 음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1970년대 말 `상록수`와 `늙은 군인의 노래`는 발표하고서 제대로 대중에 선보이지도 못했다. 그즈음 학교를 졸업하면서 `기성세대`로서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야한다는 중압감도 그를 내리눌렀다.
거기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1981년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단까지받는다. 병을 이겨내고 발표한 것이 `하얀 목련`.
양희은 음악 인생 제2막이 열린 것이다.
“제 노래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노래가 `하얀 목련`이 아닌가 싶어요. `통기타 가수`로서 활동을 일단락지었죠. 이어 `한계령`도 나왔고요. 그런데 그때는 정신없이 방송하느라고 이 노래들이 히트한 것도 전혀 몰랐어요.”
활발히 활동하던 1987년 그는 만난 지 3주만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미국으로 돌연 떠났다. 그는 “내가 미쳤었다(웃음)”라고 돌아보면서도 “둘다 첫사랑처럼 한눈에 반했다.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동물성` 사람을 싫어하는데 그는 상큼한 느낌의 `식물성`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가 돌아온 뒤 1990년대 중반 대중음악계는 급변을 맞는다. 대형 연예기획사가득세하고 아이돌 가수가 등장하면서 장르의 편향성도 심화했다. 물론 어떤 세대에는 `응답하라`고 외치고 싶은 소중한 시절이지만, 기획보다 순수가 우선이던 시절을 지나온 그에게는 `쓴맛`이 강하다.
“요즘 팬들을 만나면 `옛날에 참 좋아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러면 저는 `지금은요?`라고 되묻곤 하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 분들은 새 노래를 불러도 관심이 없고, 현실적으로 들려드릴 통로도 부족하죠. 단지 추억의 노래만 있는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런 고민의 결과로 그가 택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다. 양희은은 10월께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시기를 묻자 `찬바람 불어올 때, 스웨터 입기 시작할때` 즈음이라고 시처럼 답한다. 발표할 앨범이 이상순을 비롯한 후배 뮤지션들과의 공동 작업의 성과라는 사실이 앞서 알려지면서 많은 궁금증을 낳았다. 그는 “그냥 해보고 싶던 걸 해봤다.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많이 해왔으니 이제는 다른 작업도 해보고 싶다. 작곡가가 다르면 음악도 다르다. 새로운 도전이 재미있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