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에서 한낮을 보내자고 약속한 것이 벌써 두 달도 더 된 일이다. 그곳에 있는 오세영 시인의 시골집에서 시집 출판 기념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안성에 가려면 남부터미널이라는 곳에 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 오전 열 시 반에 터미널에서 만나 안성으로 내려가니 열 두시 남짓 되었다. 마중 나온 분이 있어 그분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도중에는 길가 커피숍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했다.
꽃양귀비라는 빨간색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커피숍 파라솔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꽂양귀비 꽃잎이 떨어져 있어 몇 잎 주워 책갈피에 끼워 두려는데,그 꽃잎들은 어찌나 얇고 부드러운지?
6월의 첫번째 날은 좀 덥다할 만큼 화창해서 잔치집 나들이 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이다. 산빛은 연두빛 대신에 푸른빛 짙은 녹음으로 변해가고 있고 모내기 앞둔 논들은 풍요로운 내일을 약속하는 듯하다.
작은 베르나 자동차 안에는 다섯 명이나 탔는데 저만치 경찰들이 검문 검색을 하고 있다.
ㅡ무슨 일이지요?
ㅡ안성에 구원파 교회가 있잖아.
ㅡ금수원 있는 곳이 바로 여기야.
ㅡ그렇군요.
검문소에는 차단기가 이중으로 쳐 있고 젊은 경찰관 둘이 우리 차를 세운다. 차창을 내리도록 하고 차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듯이 우리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한다. 그렇게 검문소를 통과한 우리는 불과 오 분을 달리지 못하고 또 임시 검문소를 만나야 했다. 이번에도 검문은 똑같이 이루어졌다.
ㅡ과연 유병언이 이쪽으로 올까요?
ㅡ밀항이라도 하겠지.
ㅡ벌써 밀항해 버린 게 아닐까요?
ㅡ못 잡는 거야, 안 잡는 거야.
ㅡ선거 전에 잡을까?
ㅡ못 할 것 같아요.
ㅡ그러다 말 수도 있고.
ㅡ우리가 남이가가 뭐야. 무슨 뜻이야.
ㅡ이건 무슨 선문답도 아니고.
시집 출판기념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열 명 남짓이었다. 점심은 맛 있었다. 수제비가 들어간 메기 매운탕을 땀을 흘리며 먹고, 석남사라는 천년 고찰을 둘러 보았다. 선생님 댁에 가서 새로 나온 시집에 실린 시들을 돌려가며 읽고, 저녁에는 바베큐까지 해 먹었다.
그러다보니 금방 밤이 되었다. 이제는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좋은 날이었지만 연일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던 나는 무척 피곤했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세상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탓에, 나는 무슨 우국 처사처럼 밤마다 온갖 뉴스를 서핑해 보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소식에까지 귀를 기울여 왔다.
ㅡ또 검문이군.
ㅡ그러네요.
ㅡ젊은 사람들이 고생이네.
ㅡ성과 없을 것 같은데.
ㅡ그나저나 큰일이야.
우리는 세월호며 유병언이며 지방선거 같은 일들에 관해 더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모두들 피곤한 데다가 서로들 너무 오래 이 사태에 직면해온 까닭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 문제가 쉽게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돌아오는 내내 잤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자 밤이 깊었고 나는 이제 혼자였다.
세상의 눈은 벌써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지 몰랐다. 선거가 닥치면 여당이 어떻고 야당이 어떻고 하는 말들이 나고, 조금 더 있으면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4월16일의 일을 아주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4월이 오면 나는 어쩌면 4·19보다도 먼저 4·16을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밤이 너무 깊어서 나는 결국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에 가서도 내 넋은 어제도, 그저께도 그러했던 것처럼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