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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유행이 되는 나라

등록일 2014-05-27 02:01 게재일 2014-05-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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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교사라는 죄목으로 침묵을 지키며 산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열심히 학생들과 생활하며, 매 시간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살았고, 또 살고 있다. 노란 리본의 뜻이 꼭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 가급적 모임도 줄였다.

그러다 얼마 전 어쩔 수 없이 참석한 모임에서 너무도 기막힌 소리를 들었다. 옆 테이블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들고 있던 컵을 놓쳤다. “세월호도 이제 유행이 지났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금세 머릿속은 온통 그 말로 가득 찼다. `세월호가 유행이 지났다`, `세월호가 유행이 지났다` 참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어디 있을까. 세월호가 유행이 되는 게 이 나라라는 생각에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국가개조라는 말이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세상은 정말 그랬다. 큰 네거리마다 내걸렸던 세월호 현수막은 선거 현수막에 자리를 내줬다. 사람들은 세월호의 안타까운 이야기 대신 선거 이야기에 바쁘다. 영원히 식을 것 같지 않던 세월호 추모 열기는 인정하고 쉽지 않지만 식어가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의 한 아버지께서 그토록 부탁하던 “우리 아이들을 제발 잊지 말아 주세요”라던 울부짖음은 선거 홍보 차량이 틀어 놓은 공해(公害) 같은 유세 잡음에 묻혀버렸다.

과연 이러거도 국가개조가 가능할까. 대통령의 눈물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다. 대통령 담화문을 해체하여 담화문에 사용된 단어의 빈도를 분석하여 진정성이 있네 없네를 따지는 게 대한민국이다. 과연 이 나라에 진정성이 존재하기나 할까. 도대체 뭔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학생들에게 이 나라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세월호는 복원력을 잃었지만, 대한민국은 복원력을 잃어서는 안된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고개가 몇 번이고 끄덕여졌지만 씁쓸함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뭔지. 복원력이라는 말이 하도 강하게 기억에 남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복원력(stability, Restoring force, 原力)이란 선박이 외부의 힘에 의하여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지려고 할 때, 그 외부의 힘에 대항해 기울어지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울어지게 한 원인을 제거했을 경우에 원래의 위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선박항해용어사전, 한국해양대학교)`, `외부 힘에 대항`하는 힘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수많은 외침들 속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견디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견디고 견뎠기에 우리는 `원래의 위치 상태`로 돌아 올 수 있었다. IMF가 그랬고, 한국전쟁, 일제 강점기가 그랬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우리가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또 지키고자 하는 그 `원래(原來)`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의 원래(原來)?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물어본다면 과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근데 분명한 건 지금의 대한민국은 오염 왕국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오염된 종교! 오염된 문화! 오염된 정신! 그렇지 않고서야 세월호를 유행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망각은 인간 존재의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이라는 책을 보면 `필요하지 않은 정보와 원하지 않은 기억을 삭제하는 법을 위한 첫 번째 선물`로 망각을 들고 있다. 건강한 망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아직 저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는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언론은, 사람들은 벌써 선거로도 모자라 선거 다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로 월드컵.

필자가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반성이라고. 반성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과 같은 선진 문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묻고 싶다. 우리는 충분히 반성을 했는지? 벌써 반성을 끝내도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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