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아이들이,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바다에 수장되고 만 것이다.
처음에 바쁜 일중에 언뜻 인터넷에서 조난 사고 단신을 보고는 그렇고 그런 사고려니 했다. 밤에 다시 접한 소식은 참혹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잘못될 수는 없다. 이렇게 무력할 수는 없다. 다른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만 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고, 나흘째가 되자 사태가 분명해졌다. 국가며, 정부며, 언론이며, 이 모든 잘난 기구들, 위엄 있는 기구들이, 6천825t짜리 배 하나를 건져 올리지 못하는 헛것이었다는 사실. 아니, 그전에, 기울어져서, 서서히 침몰해 가는 배안에 갇힌 아이들을 단 한 아이도 꺼내오지 못할 유령이었다는 사실.
조난 신호를 제 때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기울어져서 바닷물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배를 왜 그렇게 보고만 있었는지? 구원을 위한 조치들은 어쩌면 그렇게 엉성하다 못해 엉망진창이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렇게들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지?
이 참혹한 사태 앞에서 가장 꼴불견이었던 것은 차라리 언론이었다. 언론은 일제히 선장을, 선원들을, 사주를, 총리를, 장관들을, 해경을, 정치인들을 비난해댔다. 무엇들 하느냐고,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하고 있었느냐고.
하지만, 그러면, 언론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치 권력을 둘러싼 쟁투와 게임 속에 스스로 몸을 담그고, 이 편이 좋다, 저 편이 나쁘다, 편가르고 싸우는 주역이 되어 지난 모든 나날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가?
아무리 참혹한 일을 당해도 냄비처럼 끓어올랐다 제 풀에 식어버리는 것은 바로 언론이 아니던가? 카메라 앞에서의 그 분노한 포즈들은 뭔가? 그것은 다 가식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우리들 기성세대 모두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도, 정치 집단도, 기업도, 언론도, 학교도, 당신도, 나도, 모두 치명적인 병세 감염되어 있음을, 사태의 본질, 저변에 바로 우리들 기성 세대의 병든 가치의식, 병든 생리가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들은 지금 모두가 화려한 물질적 메커니즘의 수치를 향유하며 살아간다. 단군 이래 이런 번영은 없다고들 한다. 무역 수지가 어떻다고, 성장률이 어떻다고 한다. 더 많은 수치, 더 높은 수치를 겨냥해서, 더 빨리, 더 일사분란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써내라고 한다. 목표를 이루는데 거리적거리는 것은 무시하라고 한다. 방해가 되는 요인들은 제거해 버리라고 한다.
대한민국도 비유하면 한 척의 배다. 거대하고 복잡하지만 배라면 배다. 세월호도 그 앞에 서면 위용을 부러워할 만 했다. 대한민국호도 지금 위용을 떨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섰다 가다를 반복하는 원자력발전소들은 과연 안녕할까? 북한의 핵실험이며, 전쟁 위협은 일상의 하나일 뿐이라고 무시해도 되는 걸까? 공장들은, 생산의 현장들은 과연 지금 안전할까?
이 작은 반도의, 그것도 절반밖에 안 되는 땅,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모든 곳으로 단 번에 퍼져나갈 이 땅에서, 우리는 정말이지 너무들 태연하게, 무시하고 외면하며 살아가고들 있는 게 아닌가?
지금 남의 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본다. 슬프다는 말보다도, 참괴하지 않은가? 수장된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우리들 자신의 발뿌리를 보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수학여행을 떠난다고, 엄마들, 아빠들에게 웃으며, 즐거워하며, 재잘거리며 떠난 꽃송이 같은 우리의 아이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 이 나라, 이 사회를 끌어가는 메커니즘, 가치의식, 생리를 근본적으로 되돌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더 나은 작동 원리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