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미술사에 있어 박수근과 함께 양대 거목으로 잘 알려진 이중섭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가족들과 함께 원산에서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을 내려갔다. 1년 남짓 제주에 머무는 동안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아내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의 처가댁으로 보내고 이중섭은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펼쳤다.
1955년 미도파 화랑 개인전에 이어 대구 USIS에서도 개인전을 가졌지만 그림을 사주는 이는 그리 많지가 않아 늘 궁핍한 생활을 이어 가야했다. 예술가로서의 깊은 좌절과 자괴감으로 부두노동과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목숨을 연명했지만 극도의 영양실조와 간염을 이겨내지 못하고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중섭과 같은 비운의 화가를 한명 더 꼽으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서양화가 나혜석을 떠올리게 된다. 수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통해 미술을 배우고, 개인전과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나혜석은 우리나라 신여성 1호이며 여권운동가로 유명했다.
하지만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인해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외면 받고, 사회로부터는 비난과 조소를 들으며 심신이 병들어 갔다. 그리고 말년에는 불가에 귀의하지는 않았지만 수덕사에서 승려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약해진 심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어느 겨울날 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려한 예술작품 뒤에는 어둡고 힘든 창작환경과 어려운 예술가의 삶이 항상 숨겨져 있다. 마치 화려한 무대 뒤의 숨겨진 어수선한 대기실과 아름다운 그림의 뒷면과도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 예술가들은 이러한 삶을 운명처럼 여기고 마치 예술가들은 인간이 누려야 할 풍요로운 삶의 질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4대 국정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과 함께 예술인들의 사회보장과 직업안정, 창작활동 지원 등 예술인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이 개발될 예정이란다.
지난해 정부는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하고 인문·정신문화 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에는 저소득 예술인들에 대한 산재보험료 국고지원비율을 작년 30%에서 50%로 확대하고 표준계약서를 체결한 예술인과 사업주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료의 50%를 지원키로 했다.
이러한 정책들이 한눈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좀더 쉽게 말하면 지난해 예술인들에게도 실업수당에 준하는 창작지원금을 5개월간 월 60만원씩 1천831명에게 지원했으며 예술인 직업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을 3천768명에게 지원했다. 그리고 올해에도 이러한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올해 예술인 복지예산은 전년대비 38.5% 늘어난 약 200억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중섭과 나혜석과 같이 `예술가의 삶`은 곧 `비운의 삶`이라는 말이 적어도 문화융성을 이끌어 나가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문화가 있는 윤택한 삶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