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유병록 지음 창비 펴냄, 127쪽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병록(32) 시인의 첫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창비)가 출간됐다.
등단 당시 “시선의 깊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 서둘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묘사력이 탁월”하다는 호평을 받았던 시인은 산뜻한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시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묵직하고 개성적인 첫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사이의 균열”에 숨결을 불어넣는 “대지의 상상력”(손택수, 추천사)이 넘쳐흐르는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전통적 서정과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면서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운 삶의 결을 발견해내는 시적 인식과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도드라진다. 또한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다채로운 빛을 반짝이며 다사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유병록의 시는 `몸의 언어`라 이를 만하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이 해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병록 시인은 시적 대상의 육화(肉化)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붉게 익어가는/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개의 심장”(`붉은 달`), “땅에 묻힌 자가 팔을 내밀 듯/피어나는 꽃” “부러지는 손가락처럼/뚝뚝/꽃잎 질 때”(`완력`), “굽이를 지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물방울, 뼈가 부서지고 체온이 탈출한다 살점이 공중으로 튀어오른다”(`중력의 세계`)에서 보듯, 시인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그려내는 시적 세계의 풍경은 바로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물질성을 띠며 선명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유병록은 몸의 언어를 매개로 언어와 현상세계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려 한다. “아무도 부축하지 않는 생은 지구가 업고 간다//구부러진 자들은 두 손으로 지구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구부러지고 마는`)에서 보듯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인 영향 관계에 있으며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딘다는 것을 통찰하는 시인은 사과 한알이 둘로 쪼개지는 틈새에도 “검은 피가 흐르고 흰 뼈가 돋아”(`검은 피 흰 뼈`)나는 존재들의 세계가 있음을 일깨운다. “종이 한장 갖지 못한 자들이 제 몸을 펼쳐 이야기를 기록하는”(`너를 만지다`) 순간이기도 하면서, 문자와 종이의 관계를 뼈와 몸으로 여기는 시인에게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에 검은 잉크가 새겨지면서 새로이 시가 탄생하는 순간”(양경언, 해설)이기도 하다.
유병록의 시는 진부하고 어설픈 상징이나 알레고리 혹은 흐리터분한 이미지의 나열로 빈약한 사유를 눙치거나 얼버무리지 않는다. 시인은 바람에 날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구겨진 종잇조각에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읽어내고 “검은 뼈가 자라듯 글자가 새겨지던 순간”과 “뼈를 부러뜨리고 온몸에 상처를 남긴 완력”(`구겨지고 나서야`)을 포착해내는 섬세한 시선으로 사물의 실체를 꿰뚫어보며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은 또한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다더군/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사자(死者)의 서(書)`)에서처럼 상징적 관념을 찬찬히 풀어놓거나 때로는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환상적 세계를 펼쳐놓기도 한다.
유병록이 고등학교 때 쓴 시 `식구`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히고 있다. 그만큼 탄탄한 기본기와 내공이 입증된 셈이다.
손택수 시인은 “석탄처럼 막막한 밀도의 어둠을 품고 피워낸 불꽃 같은 시집으로 시단에 또렷한 첫발자국을 새긴 이 시인의 첫걸음으로 하여 우리 시는 희미해져가는 두근거림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