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울에 출장을 간 김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미술 100선`을 관람했다.
주말이면 미술관이 매우 복잡하니 가급적 평일에 방문해 달라는 담당 큐레이터의 조언을 무시하듯 일요일 점심에 맞춰 찾은 미술관은 과히 그 명성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가족과 연인 등 다양한 부류의 관객들이 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필자는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는 버릇 중 별난 게 하나 있다. 그건 전시장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함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만큼이나 감상자의 모습과 관람태도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국 근·현대 명작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운과 함께 다양한 모습의 관객들을 만나는 재미는 대형 전시회의 또 다른 묘미다.
한국인의 기상이 고스란히 표현되어져 있는 이중섭의 `흰 소`와 함께 달구지에 그의 가족들이 모두 올라 탄 모습을 표현한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작품은 이중섭을 대표하는 그림인 만큼 관객들의 반응 또한 제 각각이었다.
호탕했던 작가의 모습을 그의 작품과 관객의 얼굴에서 다시 한번 찾아 볼 수 있었다. 고흐나 고갱처럼 길지 않았던 이중섭의 삶은 세상과의 불화와 생활고가 주는 고통으로 순탄치 않은 생애로 마무리 됐지만, 그에게 `명작`이라는 불후의 자식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즉 자아 존중감의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이룩할 수 있었다고 본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머슬로우는`인간의 욕구`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으며 그 중 자아 존중감의 욕구(Self-Esteem Needs)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자아존중감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갖게 되는 자아존중감과 스스로 자기를 높게 생각하는 자아존중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존중해 주기 때문에 갖게 되는 자아존중감에는 명성, 존중, 지위, 평판, 위신, 사회적인 성과 등에 기초를 두는데, 이는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높게 생각하는 자아존중감을 지닌 사람은 내적으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므로 자신에 대한 안정감과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과 예술 활동에 대한 만족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가장 우선시 되는 욕구 중 하나이다.
다양한 경험과 예술적 가치가 담겨지지 못한 작품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지만, 자기만족에 의해 이뤄 낸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 앞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자신감을 내세우는 것이 `예술가의 자존심`이다.
가난과 궁핍함이 늘 따라 다녀도 자기 스스로의 작품세계에 대한 만족감과 자긍심 없다면 예술가로 존재하기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위대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는 위대한 예술가만큼이나 예술의 감상하고 이해하려는 관객들의 욕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감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예술가의 자존심과 예술가의 삶을 파고드는 관객과의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그 가치 또한 큰 변화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예술의 새로운 욕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