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한시로 본 조선시대 지식인 사회·문화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2-28 02:01 게재일 2014-02-28 13면
스크랩버튼
 `한시의 품격`  김풍기 지음  창비 펴냄, 291쪽
선비의 삶과 사상을 담은 한시를 독자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앞장서온 강원대 김풍기 교수가 `한시의 품격`(창비)을 출간했다. 조선시대 주류 문화인 한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그 속에서 조선 지식인 사회와 문화를 읽어낸다. 저자는 한시를 양반만의 전유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대부의 시뿐만 아니라 속세를 벗어난 승려의 시 그리고 신분적 불평등을 문학으로 승화한 중인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살핀다. 좋은 시작품을 읽는 가운데 자연스레 그 안에 깃든 `옛사람이 시를 보는 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읊은 한시의 세계가 오늘날 우리 삶의 풍경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하려는 의도다.

김 교수는 한시가 조선 지식인 사회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고상한 듯 보이는 한시의 세계뿐만 아니라 한시와 더불어 살아가던 이들이 일으키는 잡음까지 포착해서 생생하게 들려준다. 옛것을 인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문화에서 표절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자존심을 건 문인들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는지, 날선 비평의 세계에서 한시가 어떻게 살아남아 전해지는지 등 조선 지식인 문화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서슴없이 들춘다. 좋은 한시를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어떻게 해서 그 작품들이 오래도록 남아 전해지는지 알려주는 책은 드물다. 그 배경과 과정을 찾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한시의 품격`은 좋은 길잡이 책이 될 것이다.

10대의 어린 총각부터 70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어울려서 답안지를 쓰고 마음 졸이며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것은 과거시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렇듯 입신양명을 꿈꾸며 관직에 나아갈 때도 모든 명예를 버리고 초야에 묻힐 때도 그들 곁에는 언제나 한시가 함께했다. 그러다보니 한시에 얽힌 믿기 힘든 일이 전해지기도 한다. 시 귀신에 얽힌 이야기가 대표적인데 글자 한 자 모르는 시골 선비가 어느날 뛰어난 시를 짓게 된다거나,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에게 귀신이 답을 알려준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를 중세 지식인을 옭아맨 관직 진출에 대한 부담감이 시문(詩文)의 신비스러운 성격을 강화시킨 결과라고 해석한다.

사실 한시는 선비에겐 지식의 감옥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대부 커뮤니티에 끼기 위해서도 한시를 짓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허름한 행색의 선비가 좋은 시구 하나로 상석에 앉아 명주를 얻어먹는 일화는 수두룩하다. 이렇듯 저자는 선비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한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좋은 한시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견 어려워 보이는 시운론, 천기론, 성령론 등의 문학이론을 깊이 있게 다루는 이유다. 하지만 그 핵심을 설명할 때에는 서거정, 이규보, 허균 등의 문집에 실린 글과 시작품을 직접 인용해 옛사람의 생각을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