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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으로 길들이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2-28 02:01 게재일 2014-0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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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은행 신입사원 연수 관련 동영상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삼백여 명의 신입 행원들이 멀쩡한 양복의 상하의를 걷어 부친 채 말 타기 자세를 취한다. 군대에서 집단 얼차려를 할 때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드레스셔츠 등짝엔 물을 퍼부은 듯 땀이 흥건하다. 흐트러진 자세가 될라 치면 교관의 질타는 이어진다.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다. 견디다 못한 몇몇은 구토를 하거나 탈진한 채 쓰러진다. 삼 년이나 지난 화면이라지만 여전히 그런 식의 신입사원 연수를 하는 곳은 많다. 슬픈 현실이다.

혹자는 이런 극기 훈련을 통해 애사심을 기르고 동료애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집단 우선주의 또는 맹목적 국가주의에 길들여져 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기업도 국가의 축소된 형태이다. 작든 크든 집단의 안녕과 이익 앞에서는 개별자의 개성과 존재 이유는 묻혀도 좋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잦은 이민족의 침입이라는 상황 속에 국가나 집단 이데올로기의 소중함에 자주 노출되었고 그것이 자연스레 체화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국가나 민족의 본래적 목적은 개인의 주체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그 무엇은 아니었다. 애초에 개인의 주체성을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해 집단과 국가가 생겨났다. 하지만 거꾸로 되어 오늘날 도덕 교육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다. 맹목적인 감성적 국가주의에 호소해 개인의 희생정신을 은근 조장하기까지 한다. 이런 생각들이 기업 정신에 고스란히 연결되면 위의 신입사원 연수 모습 같은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듯, 기업 또한 개인을 소모품으로 취급해도 저항 없이 견디라고 주입한다. 애사심이나 동료애라는 명분을 내걸어 개인적 모욕쯤이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개인을 억압하고 길들여서 도산 안창호의 주인정신을 주입하면 뭘 하나? 지치고 무력화된 상황 앞에서 창의력과 자유의지는 저만치 달아나고 마는데. 자발성이 배제된 모든 통제는 모욕감과 회의감을 낳을 뿐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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