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거기에 나오는 모든 말들이 새겨들을 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한 상담자가 나왔다. 미인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단다. 꼭 사귀고 싶었으나 경쟁자가 많았다. 그럴수록 지극정성을 다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드디어 여자랑 사귀게 되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여자의 성격은 안하무인격이었다. 많은 걸 남자에게 요구했고 명령조로 말했다. 사소한 것도 의존하고 별 것 아니 것에도 참견했다. 한 마디로 자신을 종 부리듯 한다는 게 남자 상담의 요지였다.
그 상황에서 패널들의 조언이 내겐 충격적이었다. 그 정도도 견딜 수 없으면서 미인을 차지하려 했느냐는 힐난조였기 때문이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는 자학적인 마인드에서 나온 조언은 건강한 건 못 된다. 거꾸로 생각해서 어떤 매혹적인 남성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남자의 매력에 빠져 매달리다시피 해서 여자가 사귀게 되었다 치자. 우위에 있는 남자는 그 여자를 종 부리듯 해도 되는 것일까. 일방적인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언젠가는 한계치를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기 전에 그것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흔히 참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참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도덕적이며 안정감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이 시달려본 사람들일수록 참아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모든 것은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 상황을 인정한다면 무조건 참는 게 능사만은 아니다. 애초에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참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작정 참는 것만큼 행복지수를 갉아먹는 것도 없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