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자족감에 찬 표정으로 자주 턱을 괴었다. 메달 근처에도 가지 못한 나머지 선수의 심정이 이상화 선수의 표정에 투사되었다. 겸손이 미덕은 아니지만 저 땐 겸양의 페르소나도 필요한데 하는 맘이 들었다. 이게 다 심리학 책 탓이다. 인간 행동 패턴으로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책들의 잔상이 내 심사를 건드렸다.
말만이 언어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말보다 몸의 언어, 즉 비언어적 태도가 더 많은 정보를 준다고 강조한다. 행동 심리학 책들은 얼굴부터 발끝까지 몸동작 하나하나가 무엇을 말하는지 친절하게 분석해준다. 이런 책을 읽다 보면 타인의 몸말을 허투루 보지 않게 된다. 저 사람이 입구 쪽을 바라보는 건 빨리 이곳을 뜨고 싶다는 제스처야. 손을 책상 아래로 감추는 걸로 보아 저이는 자제심을 발휘하는 중일 거야. 다리를 갑자기 흔드는 저 남자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책의 영향으로 타자를 향해 이런 분석을 하게 된다.
한데 이런 면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심리학 서적이 아무리 과학적이고 심층적이라 해도 타자의 몸 언어를 명확하게 분석해주지는 못한다. 반은 받아들일만하고 나머지 반은 무시해도 좋다. 인간 행동 패턴에 관한 심리서는 필요악이다. 타자를 이해하는 긍정의 수단도 되지만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흐름으로 봤을 때는 공감도 된다. 내 실수를 줄이고 더 나은 행동을 하기 위한 지침서로 삼을 만하다. 타인을 적극 수용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한 목적이라면 인간의 몸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