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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 닫고 사는 새시대 `바벨` 모습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2-21 02:01 게재일 2014-02-2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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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정용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12쪽

2009년 등단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짙은 인상을 남기며 평단의 기대를 받아온 소설가 정용준이 첫번째 소설집 `가나`(2011)에 이어 첫번째 장편소설 `바벨`(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말이 얼음 결정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아름답고 불길한 동화 `얼음의 나라 아이라`로 시작되는 `바벨`은 이 동화에서 영감을 받은 천재 과학자 노아가 말을 결정화하는 실험에 실패한 뒤, 말이 만들어내는 부패하고 냄새나는 펠릿 때문에 사람들이 말문을 닫고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바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과 `소통`이라는 언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런 SF적 상상은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결합해 먹먹하고 절망적인 시기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 고통을 실감하게 한다. “`바벨`은 (소재적으로는) 종말의 문제를 `언어`의 형상화와 소통이라는 문학의 오랜 고민과 더불어 제시하고, (서사적으로는) 종말론적 이야기가 거의 필연적으로 당도하게 될 선택의 아포리아와 정직하게 대면하며, (주제적으로는) 그 아포리아가 유발할 수 있는 종말론적 염세주의에 손쉽게 투항하지 않은 채 급기야는 어떤 희망이라는 삶의 형식에 도달하고야 만다”(강동호). 말의 무게를 재는 이 한 편의 실험극은 `정용준 소설`이라는 거대한 결과와 함께 우리 소설의 새로운 미적 성취를 보여줄 것이다.

“사랑에 도달한다는 것은 언어를 나누는 공통 감각의 현장에 두 사람이 함께 입회, 근원적인 실존을 나누고 느끼면서, 다시 둘로 나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에 대한 정용준의 끈질긴 천착이야말로 종말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예표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벨`은 여전히 우리가 희망을 더듬어 나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를 느끼도록 만드는 중이다.”- 강동호(문학평론가)

정용준 소설에는 유독 언어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말에 대한 욕망에도 억압과 폭력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인물이 그려진 `굿나잇, 오블로`나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차라리 벙어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말더듬이의 이야기 `떠떠떠, 떠` 등.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말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관심이 언어 장애를 겪는 전 인류의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말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포획해버리는 가혹한 실험을 한다.

`단 하나의 욕망`인 `말`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 우울한 공상은 그 정황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공포와 혐오의 감정에 휩싸이게 하고 우리를 슬픔 안에 가둔다. `말`이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한 소설적 분투가 감정적 격정을 일으키고 얼룩처럼 남아 무게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먹먹해지는 가슴은 물리적 상처처럼, 흉터처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누구도 쉽게 어떤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말`을 가진 인간 모두에게 이 소설은 극단의 체험이다.

종말의 시대를 보여주는 문장들은 계시의 순간처럼 잠언으로서 기능한다. 이것은 작가 특유의 시적 문체가 한 시대를 말하는 이 소설에서 얼마나 절묘한 문장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말에 대한 오만이 말로써 끔찍한 형벌을 받는 상황은 “역사는 영원한 밤을 맞이했다” “오래전에 시작된 현재”, 그리하여 “종말은 미래가 아닌 현재였고 과거였다”는 문장을 입으며 언어라는 관념적 대상은 물리적 속성을 갖고 살아나게 된다. “역사적 진보의 확신이 남아 있지 않은 세계의 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정확한 문장인가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요나와 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가리켜 “두 사람의 언어가 서로의 언어를 만지는 행위”와 같다는 강동호의 지적은 좀더 효과적으로 정용준의 문장을 대변한다. “`바벨`에서 보여주는 이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는 결정적이다. 종종 우리는 문체를 이야기와 구별되는 어떤 부차적인 요소로 간주해버릴 때가 있는데, 최소한 정용준의 소설에서 문체는 그야말로 소설의 몸과 같아서 그것만으로 소설의 주제를 체현하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배려하면서, 한편으로는 끈질기게 만지려고 접근해가는 작가의 노력이 이렇게 표현되는 중이다.”

▲ 정용준 소설가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어릴 때부터 말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말을 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말더듬이로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장용학과 박상륭은 사변화하고, 편혜영과 백가흠은 사회화하고, 백민석은 탈승화한 그 데스트루도를 정용준은 서정화”(김형중)한다는 지적을 다시 상기해보면, 정용준의 소설이 서정화되는 지점은 소설과 작가의 내밀한 밀착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전에서 나오는 평면적, 서사적 친화가 아닌 자신의 모티프를 꿰뚫고 들어가 앓는 밀착이다. `사후의 세계` `SF-우화`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로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 작가만의 이 방식은 불가능해 보이는 소재를 작가 자신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만들고야 마는 능력이다. “깊게 파고든 밀도 높은 어둠”으로 작품 읽기는 괴롭지만 끝내 작품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하는 힘, 그것은 진실한 한 작가와 나누게 되는 `공통 감각` 때문일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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