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길이 111.12m. 짧다. 짧아도 너무 짧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트랙에 매달린다. 너무 짧아서, 그들은 돌아온다.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해야 한다. 하지만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 있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으나, 매번 다르게 돌아온다. 더 지쳐서, 더 절박해져서, 그래서 더 큰 갈망을 품고, 힘겨워하며, 그래도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원리에 순응하여, 마지막 골인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은 매번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이기고 많은 이들은 진다. 결승선에 바짝 다가설 때까지 정말 누가 승자인지 판가름할 수 없다. 심지어는 다 달리고도 최후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때까지는 다들 포기하지 못한다. 끝까지 승자가 되려고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다 달리고난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지는 자들이 더 많다. 이긴 자도 누구나 다시 질 수 있다.
실력대로, 정성대로 귀결되지 않는다. 가장 열심히 달린 사람이 패자가 된다. 잔꾀가 밝은 사람이 승자가 될 수도 있다.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스피드의 희생양이 된다. 빠르게 달려온 만큼 쓰러지는 충격도 크디크다. 그 쓰러지고 엎어진 자에게 시간은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좀처럼, 아주 좀처럼 말이다. 거의 모든 경우에 그는 그 레이스를 초라하게 마치지 않으면 안된다. 후회하고, 원망해도 소용없다. 아, 그런데, 운명의 수레 바퀴가 문득 다시 한번 그에게 기회를 선사한다. 앞서 달리던 자들까지 모든 쓰러뜨리고, 신은 다시 한번 먼저 쓰러진 자에게 속삭인다. 일어나 달려라. 다시는 그렇게 쓰러지지 말아라.
남의 잘못으로 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내가 지은 잘못이 아닌데도 운명의 신은 잔인하다. 신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내가 자기도 모르게 남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것은 윤리의 전락이지만, 이 전락이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고 변명도 해본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그 순간은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쓰러뜨린 자는 다시 일어나 옳게 달리지 못한다. 모든 잔인함을 감수하고도 나는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돌고 돌아, 이기고 진 것도 끝이 아니다. 레이스를 끝내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도, 마지막까지 지켜본 자들, 응원해 준 자들, 저주를 퍼부은 자들의 마지막 판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긴 자도, 진 자도, 다시 한 번 웃고 울어야 한다. 동정과 찬사와 비난과 탄식이 그들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이기고도 비난에 직면한다. 누군가는 지고도 사랑에 휩싸인다. 이긴 것이 초라해지고, 진 것이 영예가 될 수도 있다. 끝난 것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관계해 온 모든 시선이 그들을 마지막까지 따라다닌다.
돌고 도는 그 레이스는 하지만 향연이다. 한밤에 터지는 폭죽놀이다.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 하고 섬광이 일고, 그 빛이 사방 허공으로 흩어진다. 넓게 퍼져 가며 빛살들은, 빛점들은 스러진다. 모든 것이 끝났는가 하면 또 다시 연달아 빛이 번쩍이고 허공을 울리는 빛의 폭음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터지고 또 터진다. 시간을 모르는 아이들은 이 폭죽의 향연이 한밤 내내 계속될 것을 믿고 잠든다. 하지만 모든 놀이가 끝나는 최후의 시간이 있다. 섬광도, 폭음도, 함성도, 환호와 아우성이 사라지고, 밤은 이제 고요로 가득하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말없이 반짝인다. 어디선가 이 모든 것을 감각과 감정을 가지고 느낄 수 있는 생명적 존재가 새로 태어나기를 기대하며.
돌고 또 돌아야 하는 트랙에서 복수를 꿈꾼 한 사나이의 복수는 완성된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승리에는 그 승리를 위한 패배가 숨어 있다. 그는 승자일뿐만 아니라 패자였다. 나는 그의 운명을 그렇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