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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단상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2-11 02:01 게재일 2014-02-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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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의 폭설이다. 한낮이 가까웠음에도 사위가 온통 흰빛 적요의 난무이다. 창을 통해 보이는 가까운 대로엔 차들이 멈췄다 섰다를 반복한다. 이마저 고요한 풍경화 같다. 꼭 닫힌 창 너머로 움직임만 보일 뿐 소리 한 점 들리지 않는 이 모순적 평화가 낯설기만 하다. 차들의 느린 행렬, 갓길에 멈춰선 트럭, 이차선에서 비상등을 켠 채 옴짝달싹도 못하는 미니밴, 헛바퀴 굴러 갓길과 삼차선에 비스듬하게 꽂혀버린 버스 등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눈 오는 날의 실상은 낭만적 정서보다 현실적 불편함이 더 크구나. 폭설은 사람을, 풍경을 기어이 삼키고야 마는구나.

오디세우스는 10년간 끌어 온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부하들과 귀향선에 오른다. 온갖 시련들이 그들을 기다렸다. 그 중에 바다 요정 세이렌이 사는 섬을 지날 때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에 현혹되어 배가 좌초되거나 사람들이 물에 뛰어내리기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았다. 노랫소리를 포기하지 못하겠기에 자신의 몸은 밧줄로 돛대에 묶어 줄 것을 부탁했다. 만일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겨워 스스로 풀어달라고 청한다면 더 단단히 묶으라고 명령했다. 그 결심 덕에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운 노래도 들으면서 무사히 그 섬을 지날 수 있었다.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에 오디세우스 군단이 현혹되듯이 일 년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한 눈을 우리는 내심 낭만적 정서로 기다린다. 하지만 그 눈의 꼬임은 현실적 불편함이 되어 자칫하면 생명에 지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처럼 제 몸을 묶어 외적 결속을 꾀하면 좋으련만 밥벌이의 현실이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속을 위해 그저 길을 나서야 한다. 게다가 원치 않아도 암초를 만나거나 물에 뛰어내려야 하는 위험이 떡하니 기다리기도 한다.

낭만적 정서만 기대한다면 내 몸을 묶어서라도 눈 구경을 할 수 있으련만 현실 속 눈 풍광은 그것과는 한참 멀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차들은 거북이 운행 중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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