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은 지금 러시아로 집중 되어 있다. 제22회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발을 본 적이 있다.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이 오버랩 됐다. 동계 스포츠라는 것이 거의가 설빙(雪氷) 위에서 하는 경기이어서인지 선수들의 발은 마치 희귀병을 앓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의 피나는 연습량과 의지를 볼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발 모양을 잃을 정도로 피나는 연습을 한 모든 선수들에게 금빛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
세계가 동계올림픽으로 들썩인다면 대한민국 2월은 졸업식으로 떠들썩하다. 그런데 감사와 축제의 장이 돼야 할 졸업식이 언제부터인가 비난과 감시의 장이 돼버렸다. 사회 모든 것들이 형식뿐인 요즘, 졸업식은 더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해버렸다. 형식적인 졸업식은 그 동안 억눌려 지낸 학생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학생들은 보상 차원에서 자신들만의 거창한(?) 졸업식을 하는지도 모른다. 경찰의 감시를 받으면서까지 형식적인 졸업식을 할 필요가 있을까.
공교육 무용론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일반 학교, 대안 학교, 위탁 학교, 홈 스쿨 등 다양한 학교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획일적인 일반 학교 교육에 상처 받은 교육 수요자들은 교육 유목민이 되어 새 교육을 찾아 나섰다. 그 중 한 곳이 대안 학교다. 대안 교육은 1997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제도권 교육으로 편입 됐다. 그리고 2007년 6월28일에서야 `대안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이 제정 됐으니, 우리나라 대안 교육의 역사는 매우 짧다.
하지만 대안 교육은 더 이상 실험적인 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교육의 큰 줄기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정체성을 상실한 일반 학교 교육에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인성교육`, `자유학기제`, `체험 중심 교육`등 일반 학교들은 대안 교육이 이룩한 교육성과를 벤치마킹하기 바쁘다.
그런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창출을 통해 교육의 희망을 열어가고 있는 대안 교육이 교육 당국으로부터 너무 홀대를 받고 있다. 일반 학교들은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대안 학교들은 재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심지어 무상·의무교육과정에 해당하는 대안 학교들조차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오로지 수익자 부담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반 학교에는 학생들의 복지 향상과 교사들의 업무 경감을 위해 교육 복지사, 방과후 코디, 전문 상담사 등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이런 정책들만 보면 우리 교육은 분명 희망적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육 문제들은 그 심각성이 날로 더 해가고 있다. 오히려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대안 학교들이 일반 학교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는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육 재정의 재분배는 꼭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 바로 교육계이다. 일반 학교 학생들은 친절한 교육 복지사 선생님 덕분에 문화 예술 공연 관람에서부터 의료 지원까지 받으며 갑의 자세로 럭셔리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안 학교 학생들은 수백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면서 학교를 다닌다. 이게 바로 교육 불평등이지 뭔가. 대안 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엄연히 현 교육 제도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교육적 약자들이다. 이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적 약자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학년을 준비하는 2월 “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이 누구인지, 진정으로 교육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교육적 약자들은 누구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하루빨리 학력인정 대안학교에도 교육 재정 지원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