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인지도 모르지만 장소를 불문하고 교육 관련 말만 나오면 자연스레 귀가 열린다. 얼마 전 횡단보도를 건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 앞에 가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친구에게 인성교육 뭐라고 이야기를 했고, 듣고 있던 학생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를 보며 “개웃긴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인성교육이 어쩌다 개웃기는 이야기가 됐을까?
초·중·고 교과과정에 인성교육을 법으로 의무화 하는 `인성 교육 진흥법`이 곧 국회를 통과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인성교육 법제화라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반가움보다 씁쓸함을 넘어 교육에 대한 측은함까지 들었던 적이 있다. 얼마나 인성교육이 안 되었으면, 그걸 법으로 다 만드나 하는 생각에서.
`인성 교육 진흥법`(이하 `인성법`)을 발의한 정의화 의원은 “우리 청소년이 인(仁)과 예(禮)를 갖춘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성 교육의 목표”라면서 “인성(人性)이 바로 서야 교육이 바로 선다”라고 했다. 정말 옳은 말씀이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듯 경상북도 교육청은 갑오년에 인성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정말 인성법이 교육 현장에 잘 스며들어 갑오년엔 더 이상 학교폭력, 왕따, 자살과 같은 참담한 말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성(人性, personality)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특수교육학 용어사전에서는 “자신만의 생활스타일로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독특한 심리 및 행동 양식”으로,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의 성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성의 정확한 뜻을 알고 나니 학생들의 “개웃긴다”라는 말이 조금은 공감되었다. 그리고 인성법은 인성의 의미 중 전자보다 후자에 더 초점을 맞춘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취지의 법이지만, 왜 인성법이 규칙을 잘 지키는 순종적이며 어른 말 잘 듣고 착한 학생을 만드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까.
학교가 사회 4대 악의 생산지가 된 지금 인성법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과연 지금과 같은 붕어빵 식 교육,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인성교육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그리고 인성이 과연 교실에서 교과서로 길러질까라는 강한 의문과 함께 몇 가지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하지 않았는지? 앞으로 인성교육을 한다면 누가,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하는지?
“인성(人性)이 바로 서야 교육이 바로 선다“라고 한 정의화 의원의 말에는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바로 서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인성이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 그럼 인성이 바로 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책임을 전적으로 우리 학생들에게만 떠넘길 수 있을까. 인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장소는 가정과 학교다. 또 학생들의 인성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와 교사다. 어찌 보면 우리 학생들을 인성 밖으로 내몬 건 출세주의, 명문(名門)주의,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부모와 교사들인지도 모른다. 생뚱맞은 말 같지만 교사들 중에서 참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더 이상 교실에 갇혀 교과서로 하는 인성교육은 안 된다. 오히려 학생들의 수업 부담만 가중시키기는 인성교육은 절대 안 된다. 더더군다나 봉사 활동을 해 본적도 없는, 시험 숭배주의 교사들에 의한 인성교육은 결단코 안 된다. 그런데 이 불안한 기분은 뭘까?
“인법지 (사람은 땅을 본받고), 지법천(땅은 하늘을 본받고), 천법도(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법자연(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도덕경 25장)라는 말이 있다. 방학 때만이라도 우리 아이들 자연을 배울 수 있도록 제발 자유롭게 놔두면 안 될까. 그러면 인성교육은 저절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