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이 뜨겁다. 얼마 전 전국 기초단체장들이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총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 대선공약에 대한 입법화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당 공천 때문에 주민선택권 왜곡, 지방의 중앙정치 예속, 공천에 따른 비리와 잡음 등 역기능이 발생해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공천제 폐지에 대한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기초단체장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온 일인데도 이번에 다시 입법화를 촉구하게 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여야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약속했던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가 최근 사실상 물 건너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공천 폐지에 대한 당론 채택을 미루고 있는 새누리당에선 은근히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공천 폐지를 이미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 역시 내부의 반발 기류가 커지면서 진행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국회 정치쇄신특위마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난달 활동을 종료해 버렸다 하니 딱한 노릇이다.
공천 폐지를 반대하는 의원들은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면 최소한의 검증 장치마저 사라지고, 이름과 경력만 보고 투표하는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눈엔 이런 이유가 구차해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다시 말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라고 본다.
이 문제는 작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통 대선공약이었다. 여당과 야당을 아우르는 공약이었던 만큼 대선이 끝나면 바로 폐지될 듯한 분위기였고,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실행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 4월 24일 기초단체장 2명과 기초의원 3명을 다시 뽑는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은 공천을 하지 않겠다며 민주당에도 무공천을 제안했다. 이 때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권의 긍정적 변화로 인식했다. 민주당은 7월에 당원 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새누리당보다 한 발 앞선 매우 잘한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지방선거가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움직임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리 주변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의 정당공천제 폐단을 자주 본다. 2010년 3월말경, 지방선거를 두어 달 앞두고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면민체육대회가 열렸다. 면민체육대회에는 지역출신 국회의원과 시장, 해당 선거구 출신 지방의원이 참석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날은 포항시의원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처음엔 면민체육대회에 웬 시의원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행사장에 들어서고, 시의원들이 국회의원 앞에 눈도장을 찍고 한 마디라도 얘기를 나누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를 앞두고 `공천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국회의원이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다는데,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작년 가을, 인근의 모 초등학교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내빈이 참석했다. 거기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에 예속된 지금의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공천제를 버려야 한다. 이미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고 있고, 여당도 야당도 필요성을 인정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고 시간만 끌다가 내년 지방선거를 이 상태로 치르면서 공천권을 휘두르겠다는 속셈이 들여다보인다. 지금처럼 기득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쉬쉬하며 덮어두려고 한다면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시민단체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촛불은 이럴 때 켜는 게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