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야관문:욕망의 꽃`으로 20년만에 주연 복귀
“죽을 때까지 은퇴는 없습니다. 앞으로 1년에 한편은 찍으려고 합니다.”
주연 배우로 20년 만에 돌아온 배우 신성일의 말이다.
신성일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야관문: 욕망의 꽃` 시사회가 끝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열심히 체력 관리를 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관문`은 그의 507번째 주연작이다.
영화는 교장직을 퇴임하고 나서 말기암으로 생의 마감을 준비하던 남자가 간병인으로 찾아온 여인과 거부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신성일은 주인공 종섭 역, 간병인 연화는 가수 출신 배슬기가 각각 맡았다.
“1993년에 찍은 `증발`(신상옥 감독)이 마지막이었어요. 예전에는 35㎜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필름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작업했는데, 지금은 디지털로 하잖아요. 필름에 비해 쉽게 많이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 구조가 익숙지는 않지만 거북하지도 않았습니다.”
20년 만에 복귀지만 영화는 늘 그의 마음속에 자리했다. 잘 찍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무리했다. 죽을 고비마저 넘겼다. 자살하는 장면에서 보조와이어를 쓰지 않았는데,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것이다.
빨랫줄이 목을 심하게 조여오자 신성일은 무의식 중에 혀를 깨물었다고 한다. 임경수 감독은 이상하다 싶어 `커트`를 외쳤다. 임 감독은 “`커트` 소리가 2~3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했다”고 회고했다.
신성일도 “내가 욕심을 부려서 죽었다 살아났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노배우가 그처럼 무리한 이유도 `증발` 이후 점점 좁아져 갔던 그의 영화적 입지 탓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는 영화대로 망가지고, 배우가 설 땅도 없어졌습니다. 정치에 대한 유혹도 집요하게 받았어요. 그런데 결국 다른 데 가서 스스로 망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설 자리가 없어졌어요. 1990년대 후반부터 영화가 자유롭게 됐을 때는 후배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어요. 영화를 못하게 됐는데 너무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는 제작보고회나 시사회에 참가하는 후배들이 늘 부러웠다고 한다. “저곳에서 나도 언제나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야관문`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이야기가 아니라 죽어가는 한 남자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시나리오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는 “`야관문`의 시나리오를 보니 내가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작품에 임할 때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저예산영화지만 이 늙은이를 써준 것에 대해 (제작진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