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트렌드연구소는 2014년도 한국을 지배할 핵심 트렌드로 `엔도르핀 요리`를 꼽았다. 뇌의 모르핀 수용체에서 모르핀작용을 나타내는 내인성 펩티드의 일종인 엔도르핀은 모르핀처럼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요리 앞에다가 엔도르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이 용어를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소의 주장에 따르면, 이 시대에 요리는 더 이상 신체적 허기를 달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심리적 허기를 달래주는 치유의 수단이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위험성과 복잡성이 증대된 조직에서 경쟁에 의한 스트레스, 불안, 두려움과 강박 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식에다 큰 가치를 부여한다. 언제부턴가 낮은 수준의 쾌락으로 치부되던 식욕이 어느새 인간의 정신적·감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난 8월 런던의 푸드아트 비영리단체 미스케이크헤드는 `우울한 케이크상점`이란 홍보용 매장을 열었다. 이곳에서 파는 케이크는 모두 사람들의 정신질환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한 케이크에는 `나와 대화해 달라(talk to me)`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필자에게도 요리가 심리적 허기를 달래주는 치유의 수단이 되곤 했다. 러시아에서 유학하는 동안 내 사유를 충분히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통이 줄곧 따라 다녔다. 고통이 극도에 달할 경우에는 고추장을 잔뜩 넣은 비빔밥을 먹고서 네바 강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운하 주변에 쭉 늘어선 헌책방에 들어가 레핀이나 `이동전람파` 화가들의 화집을 구경하기도 하고, 체호프와 관련된 책을 읽기도 했다.
지내고 보니, 비빔밥을 먹고 나서 운하 주변의 헌책방들을 순례하고 다니며 책을 읽은 게 참 잘한 것 같다. 매운 요리가 엔도르핀을 생성한다고 한들 그게 일시적 위안을 주는 거지,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해서 근본적 처방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도는 아니지 않은가? 정신의 근육, 영혼의 근력을 키워주고, 회복탄력성을 높여주는 `엔도르핀 요리`로는 독서가 제일이 아닐까? 이 가을에 처세서, 자기계발서, 자기치유서적을 잠시 내려놓고, 좀 묵직한 고전을 들어보면 어떨까? 아니면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의 체호프`라는 앨리스 먼로의 단편들을 읽어보면 어떨지?
체호프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보통의 인간들을 주로 묘사한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통해 삶의 모순과 결핍, 근원적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거기엔 인생에 대한 깊이와 관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다. 앨리스 먼로를 `캐나다의 체호프`라고 명명하면서 `체호프의 후예`의 계보에 넣었다면, 아마도 이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그와 같은 특성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체호프의 후예들은 그녀 외에도 더 있다. `소비에트의 체호프`라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있고, `미국 중산층의 체호프`라는 레이먼드 카버도 있다. 한국근대 단편소설의 완성자인 이태준은 `한국의 체호프`라고 부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내용의 `산케이신문(인터넷 판)`의 오보는 그냥 애교로 봐주자. 하루키를 통해 노벨문학상 특수를 누리고자 기획했던 출판사들의 의도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자. 그리고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또 좌절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워하지 말자. 시인은 해마다 치르는 해프닝에도 흔들림 없이 치열하게 시월(詩月)을 살터이니.
이 가을, 차 한 잔 앞에 두고 전설적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남긴 차이코프스키 `비창`의 묵직하고 둔탁한 사운드를 들으며 체호프와 도블라토프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면 러시아 태생의 지휘자 키릴 콘드라신이 남긴 차이코프스키 `비창`의 감성적 사운드를 들으며 앨리스 먼로, 레이먼드 카버, 이태준을 느껴보라고 요청하고 싶다.
이제 포항시민으로서 희망·요구 사항을 말하련다. 포항 운하가 완공되면 그 주변으로 간이도서관과 `엔도르핀 요리`를 파는 노천카페를 만들어보자. 이동전람회와 노천영화관도 운영해보자.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서도 우리의 심리적 허기를 달래주는`실속 있는 것들`이 자꾸 생겨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