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뭉근한 연민과 은근한 저항의 관계망일 때가 있다. 허먼 멜빌은`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이러한 피로한 연민과 수동적 저항의 알레고리에 대해 짚어냈다. 수동적 저항만큼 열성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지만 그 저항에는 악의가 없고, 저항을 감당하는 자 역시 상대를 이해하려 애쓴다고.
온건하게만 보였던, 자신이 고용한 필경사가 사흘째부터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로 글씨 쓰기를 거부한다. 고용주인 변호사의 잘못을 따지는 적극적 반항이 아니라,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소극적 저항을 고집한다.`하고 싶지 않아요`가 아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는 말은 소시민 이하의 삶을 사는 필경사 을이 변호사 갑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 의사 표현인지도 모른다. 변호사가 당황하게 되는 건 갑의 입장이 아니라 보편적 정서 상 필경사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해고 통보에도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는 바틀비를 피해 변호사가 사무실을 떠나는 지경에 이르고, 바틀비는 결국 구치소에서 식음을 전폐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변호사의 입을 통해 작가 멜빌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까. 필경사는 가엾은 사람일 뿐 나쁜 사람이 아니며 악의 또한 없다고. 그는 쓸모 있는 사람이고 변호사 역시 훌륭하지만 서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우리에게는 각자의 영역이 있고, 어떤 경우라도 남의 영혼에 완벽하게 가닿지는 못한다. 한쪽은 연민하다 지치고, 다른 한쪽은 제 아픔을 소극적으로 어필하다 쓰러진다. 나와 화초도 그렇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