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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이 필요해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9-11 02:01 게재일 2013-09-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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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단세포생물이 된 기분이다. 시쳇말로 뇌가 너무 청순해진 나머지 또릿또릿한 행보와는 거리가 먼 하루를 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만 그런 게 아니다. 실수투성이 일상을 꾸리는 건 내게 흔한 일이다.

우선 독서모임에서 활용한 CD를 기기 안에서 빼내지 못해 허둥거렸다. 몸집이 큰 전문 기기였다지만, 눈썰미만 좀 있다면 금세 CD 플레이어의 위치를 찾을 것인데 내 눈엔 그 데크가 그 데크 똑 같아 보인다. 기계치다 보니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자체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저녁에는 약속 장소를 찾느라 또 헤맸다. 자주 다니는 길인데도 주변 조명이 바뀌니 이 길이 아닌가 싶어 같은 곳을 몇 바퀴나 돌고 있는 거다. 당황하다 보니 선물로 준비한 책을 전하는 걸 깜박하고 만다.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집에 돌아 올 때는 식구들 간식을 사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기다리던 식구들 표정을 보고서야 아차 싶은 거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한두 가지에 몰두하게 되면 나머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운이 좋아 신경이 덜 쓰인 것들이 떠오르면 챙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많다.

창의적이지 못한 일상이 아쉽기만 하다. 이참에 우스갯소리나 한 번 해야겠다. 곧 죽을 할머니, 내 생명을 구해준 오랜 친구, 꿈꾸던 이상형 여자(남자) 등이 급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고, 자동차로 지나던 나는 오직 한 사람만 태울 수 있다. 누구를 옆자리에 앉힐 것인가? 단순 세포형인 나는 망설임 없이 오랜 친구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창의력 만점인 다음과 같은 매혹적인 답을 내는 이도 있다. 자동차 키를 친구에게 주어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게 한 뒤, 자신은 이상형 여자와 함께 버스를 탄다. 여자가 자신을 좋아해줄 것은 차치하고라도.

두려워서, 당황해서, 예민해서 등의 핑계가 붙은 습관성 어리바리함을 벗어나고 싶다. 빠릿빠릿한데다 창의적이기까지 한 전천후 멀티플 인간형으로 거듭나고 싶지만 내 현실은 멀기만 하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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