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하다. 불편하기만 한 진실이기에 당혹스럽고 갑갑한 느낌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중1 어린 나이에 약한 이들은 악한 그들에게 철저하게 신체적 인격적 유린을 당한다. 돈 있는 집, 공부 잘 하는 집, 힘 있는 집 아이들은 개에 비유되고, 돈 없고, 존재감 없는 데다 힘마저 없는 아이들은 돼지에 비유된다. 그들 때문에 이들은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고 끝내 너무 가슴 아픈 반전의 비밀을 갖게 된다.
어느 누구도 어린 그들 간에 계층이 정해져 있다고 가르치지 않지만 그들은 교실 현장 속에서 이미 계급의식을 자각하게 된다. 가난해서 서럽고, 소심해서 두렵고, 힘없어서 무서운 아이들은 폭력과 정서적 학대에 노출되기 쉬운 캐릭터들이다. 무력해서 절망하는 아이들은 내가 무시당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뼛속 깊숙이 맛보지만, 유력해서 희희낙락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호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남의 아픔을 돌볼 근본적인 계기조차 그들에겐 마련되지 않는다. 개와 돼지의 갈등에서 개의 필연적 우위가 예견될 수밖에 없다.
`돼지의 왕`은 너무 날카롭고 매워서 눈과 혀를 돌리고 싶은 현실을 고발한다. 부드럽고, 달콤한 것들만 보기에도 아까운 날들인데 감당하기 벅찬 실상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려니 쓰리면서도 안타깝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주의와 때 이른 온정주의의 순진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는 이런 영화는 불편하지만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대개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그 이면의 차갑고 거친 공기 속에서 돼지의 왕을 꿈꾸는 서글픈 현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므로.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