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등장하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모습 중 보기에 가장 민망한 것은 대정부 질의시간에 장관을 향해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일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질의자로 나선 어느 의원이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 관련 미국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를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못 봤다고 하자 이 의원은 “국내 언론에도 났는데 신문도 안 보느냐”며 쏘아붙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장관이 빙긋 웃으며 “죄송하다. 챙겨서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또 “어디서 싱글싱글 웃느냐. 내 질의 시간 끝날 때까지 그대로 반성하고 있으라”며 묵언을 요구했다.
미국 어느 연구소의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문도 안 보느냐”며 힐난하고, 웃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장관을 벌세우는 일이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장관이 무능하다 싶으면 동료 의원들을 규합,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보내든지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하든지 해야지 일국의 장관을 부하 직원 나무라듯이 하는 행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장관을 상대로 호통치고, 장관이 쩔쩔 매는 광경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참 대단한 권력기관이구나, 정치인들은 `저 맛`에 기를 쓰고 국회의원 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은 국회의원이 국정 전반 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며 소견을 묻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 집행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하고, 정책 방향을 설정하며, 행정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독재정부 시절 언로가 막히고 집권당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야당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뜻을 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대정부 질문은 역기능이 증가했다. 특히 총선이나 대선 등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들이 면책특권을 이용해 경쟁상대가 되는 정당이나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장관은 업무와 무관한 답변까지 해야 하고, 여야 간 정쟁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은 선거구민이 직접 선출한 국민의 대표다. 국민의 대표라는 것이 국민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별한 권력이라고 오해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은 조직 내에서의 권력 관계를 `갑과 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전에는 선거구민들 앞에서 낮은 자세로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을`이 될 것을 다짐하지만, 당선되는 그 순간부터 `슈퍼 갑`으로 군림하는 그들이다. 그런 태도로 의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TV 카메라 앞에서 장관을 호되게 꾸중해야 일 잘하는 의원으로 평가받는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권위가 실종된 이 시대에도 유독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 국회다. 장관을 자기 부하 다루듯 하는 것은 특권의식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이다. 큰소리로 상대의 기를 꺾은 다음에 무엇을 얻겠다는 인식은 이 나라의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위험한 생각이다. 장관에 대한 호통이나 인격모독 발언이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보다는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국민을 짜증나게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이런 모습을 요즘은 지방의회 의원들도 닮아가고 있다. 도의회나 기초의회에서 회의를 열어 국·과장을 상대로 질의할 때도 호통을 치거나 인격모독 발언을 서슴지 않는 지방의원들이 늘어가고 있다니 걱정이다.
이제 호통의 정치는 청산할 때가 됐다. 대정부 질문은 논리와 설득으로 해야지 호통을 앞세울 일이 아니다.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대원칙 이전에 상호존중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정기국회가 다가오고 있다. 올 정기국회에서는 호통의 정치가 아닌 논리와 설득의 정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