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이고 풍성한 이야기가 소설의 재미를 보장하듯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전시된 작품 중 유독 웃음과 슬픔과 짠함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있다. 일본인 아내에게 보낸 이중섭의 그림엽서 한 점이었다. `사랑`이란 제목이 붙은 그림은 여자의 가늘고 긴 발이 남자의 사타구니 사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오른발 붉은 발톱과 남자의 왼손 붉은 손은 닿을락 말락 부드러운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을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은 장난기와 진지함이 반반이다. 사랑의 진솔한 감정을 이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당연히 그림의 주인공은 이중섭과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였다.
이중섭은 크고 긴 아내의 발을 `아스파라거스 군`이라 불렀고, 자신의 별호는 `아고리`라 칭했다. 생활고로 두 아이와 아내를 일본의 친정으로 보내야 했지만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했다. `아스파라거스 군이 춥지 않도록 두텁고 따뜻한 옷을 입혀주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아고리가 화를 낼 거요.`라고 아내의 발을 의인화해서 엽서에 적을 정도이다.
당신을 사랑하오, 이런 말과 하트 하나를 그렸다면 아무리 깊어도 그 사랑은 얕게 보인다. 하지만 아내의 발을 아스파라거스라 애칭하며 그 발을 그렸다면 아무리 얕아 보여도 그 사랑은 깊다. 작은 그림 하나가 온몸으로 들어와 저 먼 우주를 적시는 느낌이랄까. 사랑이 오면 사랑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 다만 자기만의 `아스파라거스 군`을 만들 일이다. 물론 가난하고, 지친 자의 그것이 더한 감동을 주는 것은 당연할 테고.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