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선생은 학문은 반드시 의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의문 없는 학문은 내 것이 되어도 여물지가 않단다. 한 예로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의심이 생긴다나. 착한 사람은 너무 착하고, 악한 자는 너무 못됐단다.
역사책을 쓸 때 권선징악을 염두에 두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안타까워한다. 착하게 그려진 사람이야 당연하다 해도, 악한 사람이 원래 지독했겠냐고 흥분하신다. 실제로는 선함 속에 악이 있고 악 가운데 선함이 있게 마련이라고 적었다.
어디 역사에만 그럴 것인가. 모든 시시비비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기울어지는 쪽은 있어도 완전히 옳거나 아주 나쁜 건 없다. 시와 비, 선과 악은 언제나 함께 한다. 그런 시비와 선악이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니 학문하는 자는 끊임없이 의심(탐구)해야 한다. 선생의 비유에 의하면 복숭아나 살구를 먹을 때 살은 먹고 씨는 버린다. 반대로 개암이나 밤이 생기면 씨만 먹고 껍질은 버린다. 복숭아는 살이 맛있고 개암은 씨가 고소하다는 걸 혀의 의심(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만약 혀가 의문을 품지 않았다면 밤 껍질을 먹을 수 있다고 해도 그대로 믿고야 만다.
세상은 필연보다 우연이 관장할 때가 많고 시비나 선악을 가릴 수 없을 때가 허다하다. 필연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하면 우리는 무딘 단정에 길들여지고 우연의 가능성을 열어두면 날카로운 핵심이 보인다. 역사든 현상이든 진실에 닿는 어려움을 통찰하는 이익 선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천하의 일은 놓인 형세가 가장 중요하고, 운의 좋고 나쁨이 그다음이며, 옳고 그름은 가장 아래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