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옛 동독지역의 드레스덴에 있는 드레스덴공대에 연구차 와 있으며 비교적 선선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위도가 높아 여름이 그다지 덥지가 않고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 불어온다.
독일은 출장으로는 몇번 왔었지만 시간을 가지고 독일을 차분하게 들여다 볼 기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학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전차, 버스 등 대중교통이 아주 잘 발달되고 자전거길이 잘 정리되어 공공질서가 확립되고 안전한 길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매우 깨끗하고 질서있는 사회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필자에게 더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최근 런던에 이 대학 총장과 함께 출장을 다녀오면서 받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 충격은 독일에서 그동안 느꼈던 어떤 것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필자를 대학평가와 관련한 공동연구를 위해 초청한 드레스덴공대 한스뮐러 스타인하겐 총장의 겸손과 절약은 감명을 넘어 존경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런던 출장에 앞서 가진 세미나에서 약간 늦은 총장은 회의 테이블 구석에 앉았다.
한국대학 같으면 가운데 총장자리를 비워놓는 게 상례이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았다. 먼저 온 순서대로 앉고 총장은 빈자리에 가서 앉아 세미나 연사의 강연을 경청했다. 대학발전에 관한 세미나였고 총장이 주재한 세미나였지만 늦게 왔기에 구석에 앉는 걸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한국적인 권위주의적 분위기에 익숙한 필자에게 꽤 신선한 충격이 왔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런던으로 가는 직항이 있는데도 국적기인 루프탄자를 타겠다고 프랑크푸르트를 들러가는 비행기를 선택한 건 꼭 칭찬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올라탄 스타인하겐 총장은 예상을 뒤집고 비즈니스석이 아닌 일반석인 이코노미석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대학의 보직자만 되어도 비즈니스석을 고집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코노미석에 총장과 함께 앉아서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 소탈하고 순수한 모습에 진한 감동이 다가왔다.
런던에 내린 건 밤 11시가 넘어서 였다. 하는 수 없이 호텔까지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택시에 자기짐을 손수 집어넣고 세 명이 타는데도 자리배치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한 후 회의 장소로 가는길에 당연히 대학이 예약한 임대택시가 올줄 기대했던 나는 지하철로 향하는 총장을 어이없이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런던지하철은 서울지하철 만큼 깨끗하지 못하고 냉방도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아랑곳 없이 표를 사서 나에게 건네주는 모습과 런던에서 교수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앞서서 길을 안내하는 모습은 누가 총장이고 누가 교수인지 구분하기 조차 힘들었다.
회의 내내 총장은 직접 대학을 소개하면서 홍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우린 거의 한 시간을 런던지하철로 공항까지 이동했다. 여전히 총장은 자기짐을 끌면서 다녔고 표도 직접 구매해 우리에게 나눠줬다.
갑자기 몇 년 전 대구에서 있었던 대통령 주재 어떤 회의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기초단체장 자리보다 뒤에 배치된 어떤 총장께서 갑자기 일어나 자리배치를 탓하면서 “총장은 장관급인데 이럴수가있느냐”따졌다고 한다. 순간 좌중은 당황한 상황이 됐는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왜 총장이 장관급이냐 대통령급이지”라고 받아넘겨 위기를 넘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독일대학 총장의 행동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이야기다.
최근 일어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도 미국신문에서는 한국의 비행기 조종사 간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사실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문화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어떤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이런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허세에 의한 낭비를 줄여야 한다.
장관, 국회의원, 총장…. 이런 공직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봉사하는 자리이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권위의식을 버리고 솔선해 절약하는 정신을 보이고 오히려 국민들과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더욱더 애써야 한다.
스타인하겐 드레스덴 총장과의 짧은 런던출장에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고 그리고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