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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프롬프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7-18 00:15 게재일 2013-07-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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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 대통령의 방미 외교 때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미의회 연설이었다. 영어로 진행된 연설은 호불호가 엇갈렸다.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어조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와, 국가원수가 모국어를 버리고 굳이 외국어 연설을 할 필요가 있냐는 이들로 나뉘었다. 둘 다 옳지만 나는 전자 편이었다. 이 글로벌한 시대에 영어의 본무대에서 우리 대통령이 그 나라 말로 연설을 했다고 뭐 그리 자존심이 상할 것인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박 대통령의 발음이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일반 국민으로선 그 정도면 성실한(?) 연설을 한다 싶었다. 발음 가지고 시비 거는 이들은 반기문 유엔 총장더러 같은 시비를 거는 것만큼 이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동한 것은 대통령의 당당한 태도 때문이었다. 영어로 연설을 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연설을 하는데도 어쩜 저리 기품 있고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할까 싶었다. 의례적이라 해도 미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야 그 비밀을 알았다. 연설을 돕는 투명프롬프터가 연설대 양옆에 있었던 것이다. 밑바닥에 텍스트를 놓고 빛의 반사 원리를 이용하면 투명 프롬프터에 선명한 글씨가 뜬다. 연설자의 눈높이에 맞게 양쪽에 투명 프롬프터를 설치하면 청중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좌중을 번갈아 보듯 시선을 돌리면 감쪽같이 프롬프터에 뜬 연설문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몰랐을 뿐, 투명프롬프터는 연설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문명의 이기란다. 오바마 대통령도 안철수 의원도 이것을 활용한단다. 괜히 속은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곰곰 생각하니 이런 감정 또한 허세이다. 연설은 그 내용의 진정성에 있지 그걸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아니질 않나. 연설문을 단순 낭독하는 지도자보다 연설 자체를 멋지게 하는 지도자를 원하는 청중이 있는 한 투명프롬프터의 진일보는 계속될 것이다. 달 자체가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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