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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음에 대하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7-16 00:32 게재일 2013-07-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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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자기합리화를 꾀할 수 있도록 방어기제가 되어주는 명언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긍정의 아이콘으로 변해 그 상황을 즐기는 게 낫다고 역설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쩐지 인간 숙명의 한계를 보는 것 같고 패배의식을 자인하는 것 같아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피할 수 없으면 피해라, 피할 수 없으면 도망가라, 정도는 되어야 신념과 행동을 일치하는 주체자로서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영혼이라면 합당한 이유 앞에서 고통이나 불이익이 따르더라도 그 상황을 피하면 되지 굳이 즐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간사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가고 싶은 상황이 발생하고, 그야말로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만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행동과 태도가 불일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정서이다.

인지부조화 상태에 이르면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변화시켜 인지 조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대개 자신의 태도를 바꿔 합리화한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이 오는 건 당연하다.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이때 우리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같은 말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정신적 패배를 이렇게라도 위장해야 덜 씁쓸해진다.

같은 옷이지만 친구보다 비싸게 산 내 옷이 더 좋은 것이고, 혹독한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애국자가 된다. 그 상황을 개인적 차원에서 되돌릴 수 없으니 긍정의 화신이 되어 내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래야 견디는 걸 어쩌란 말이냐. 피하고자 했던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은 생기고, 그것을 최대한 즐기라고 세뇌할 수밖에 없는 제 인간조건에 연민이 인다. 인지부조화의 조화를 위해 오늘도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모든 심리적 고뇌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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