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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7-15 00:22 게재일 2013-07-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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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이란 법률 용어가 있다. 피고인의 무죄 추정의 원칙에 활용되는데, 사실의 개연성에 논리적 의문을 제기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억울한 상황을 구제하기 위한 사유체계이다. 물론 합리적 의심이란 모든 의문을 포함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무조건 사물을 삐딱하게 보거나 모든 일이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는 의심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사회에서도 `합리적 의심`은 필요하다. 특히 각종 미디어를 접하는 우리의 눈은 건전한 의심과 가까울수록 좋다. 보도 매체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때 우리는 별 의심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간단한 예를 들자. 모 방송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한국인의 실태를 몰래카메라로 보여준다. 화면만 보면 캐나다인 백인에게 피실험자들은 친절했고, 미얀마 출신 청년에게는 불친절한 태도를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개 합리적 의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의 생각과 그것을 분석한 방송 제작자의 시각이 다르다는 데 있다. 미얀마 출신 실험자는 친절하게 답변한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제작진에서 악의적 편집을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제작진은 20퍼센트의 사람들만 불친절했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없는 건 아니다, 백인에게는 모두 친절하고 동남아인에게는 80퍼센트만 친절하다면 그것도 차별이다, 라는 시각을 견지한다. 상대적 불친절을 보여줬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이다.

모든 현상에서 진실은 하나이다. 언제나 이쪽과 저쪽 사이에 그것이 있다는 게 문제이다. 미디어와 소비주체 사이, 너와 나 사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그 진실은 있다. 뻔히 보이는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쪽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 주고, 다른 한쪽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가장 위험한 것은 어느 한쪽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주체들의 객체성 확보를 위해 오감을 여는 것, 이것을 합리적 의심이라 부르고 싶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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