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초등학교 시절부터 필자가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모두들 `우리의 소원`이라는 동요를 즐겨 불러왔다. 이 노래는 동요이지만 국민의 노래 라고 할 정도로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겨례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시 또는 남북이 모여 하는 행사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노래다.
이번 여름방학은 독일의 동쪽끝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로 오게 됐다. 체코의 프라하가 다른 독일 도시보다 더 가까운 곳이다. 이곳의 드레스덴공대에서 두달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였다.
언어문제를 걱정하긴 했지만, 독일은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라고 알고 있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기대는 어긋났다. 길에서나 전차나 버스를 탈 때 길가는 독일인들에게 길을 물으면 그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초빙한 독일교수에게 “독일인들은 영어 잘한다고 들었는데 영어가 왜 안통하느냐”고 물었다. 그 독일 교수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만일 한국이 통일 된후에 북한에 가서 북한사람들에게 영어로 이야기 하면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겠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때야 나는 드레스덴이 통일독일 이전에 동독에 속하는 동독의 중심도시 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이곳의 중년이상의 사람들은 제2외국어로 러시아어를 배웠기에 영어가 서툴다. 그러나 교수들이나 학생들은 영어를 꽤 잘하고 있어 학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영어가 낯선 언어이다. 그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이곳 드레스덴에서의 생활이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엣동독의 느낌을 가질수 없을 정도로 자유와 번영이 넘치는 듯 했다.
한국의 고도 경주와 같은 유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전 도시를 관통하는 잘 발달된 전차와 버스노선, 각 도시를 잇는 철도와 항공노선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속에 백화점, 상점 등이 번창하고 있었다.
대학은 세계각국에서 온 학생들로 붐비면서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강의도 많은경우 영어로 진행된다. 한국학생들도 100여명 유학하고 있으며 내가 재직하고 있는 포스텍 졸업생도 여러명 있다.
언제 이곳이 공산주의 국가였고 도시였는지 전혀 알길이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와 자유가 구가되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눈을 들어 동쪽을 바라보면서 나의조국 한반도를 쳐다 본다. 언제 우리는 통일이 되어 이렇게 한 국가, 한 사회, 한 체제속에서 이산가족이 모두 모여 살아갈수 있을까?
이곳에서 역시 한국상품을 많이 만날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이나 내가 묵고 있는 아파트의 TV나 모니터는 전부 삼성, LG 였다. 드레스덴 공대의 교수실의 TV 나 모니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화점에 들려보니 모바일폰은 삼성과 같은 한국제품이 역시 상당히 많이 진열돼 있었다.
이렇게 우리 상품들은 세계화 되어 여기 통일동독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상품들을 사가는 독일인들이 우리의 분단의 아픔을 알까?
모든 국가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이데올로기 다툼을 왜 우린 아직도 해야 하는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왔다. 왜 우리는 이들이 부셔버린 베를린 장벽처럼 한반도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부셔버릴수 없을까? 이곳에서 만난 한국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마친후 북한의 대학에서 강의 할 날이 언제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동요를 이제 그만 부르자. 이제 통일을 위해 우린 힘을 합쳐야 한다. `하나의 독일`이라고 쓰인 오랜 문구가 새겨진 고풍어린 길가의 벽을 지나면서 필자는 다가올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어 보았다. 우리도 `하나의 한국`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