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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바라보기

등록일 2013-07-04 00:24 게재일 2013-07-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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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관홍 포항 죽도성당 부주임 다문화가정 가톨릭지원센터 담당

지난달 4박5일간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위치한 `갈평 피정의 집`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 4대리구 사제단의 피정이 있었다. `피정`이라하면, 피소정념(避騷靜念) 혹은 피세정수(避世靜修)의 줄임 말이다. 풀이해 보면, 소란함(혹은 세상)을 피(避)해서 조용히(靜) 묵상(혹은 자신을 닦음)에 잠긴다는 뜻이 된다. 가톨릭 교회법에 따르면, 모든 성직자들은 1년에 한번 피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피정`과 같은 제도는 불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님들은 음력 4월15일부터 7월15일까지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참선을 중심으로 수행에만 전념하게 된다. 이를 하안거라고 한다.

기도나 묵상, 참선에서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은 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절대자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기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하루하루 반복된 삶을 살아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일터로 향하게 된다. 일터에서 역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신문과 TV 역시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마치 세뇌를 당하는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획일화 시킨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 안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성가시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를 포기한다는 것, 생각하는 것을 성가시게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동물과 구분해서 우리가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생각함에서, 사고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몇년 전 유행했던 용어가 `웰빙`이다. `웰빙`은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물질적 가치나 명예보다는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는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후반부터 이른바 `웰빙`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웰빙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구체적인 생활면에서 육류 대신 생선과 유기농산물을 선호하고, 단전호흡·요가 등의 명상 요법과 여행·등산·독서 등의 취미 생활을 통하여 심신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웰빙`이라는 말이 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평소에는 관심을 받지 못하던 단어들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새로운 단어가 생성되는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물질적인 것이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사이 잃은 것이 많았다. 근검절약을 위해서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다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피폐해진 몸과 마음뿐이었다. 숨 가쁘게 살다보니 자신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웰빙`의 시대가 지나고, `힐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갑작스레 생긴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혹은 그러한 일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까봐 상실감과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누구든 살다보면 겪을 수 있는 삶의 굴곡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움츠려들어 있기에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웰빙`을 추구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상처가 너무 많다.

피정이나 하안거는 성직자나 도를 닦는 수도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세상과 단절된 곳으로 떠나는 것, 즉 공간의 이동이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자신을 바라봄`이 근본적인 요소이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단 5분이라도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오늘 하루 행복했는가? 오늘 하루 상처받은 일은 없었는지? 어제 받은 상처는 덧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나서야, 우리는 `웰빙`을 추구하려고 했다. `힐링`도 마찬가지이다. 상처를 수없이 받고 난 다음, 우리는 `힐링`을 추구하려고 한다. 가장 좋은 치료는 예방이 아닐까? 종교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나를 바라봄`이라는 측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피정`이나 `하안거`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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