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향토기업<br>(1) 막걸리의 산 역사 `영양양조장`
힘들었던 시절 서민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향토뿌리기업들. 세월의 부침속에서도 전통방식과 수작업을 고집하며 옛 맛을 지키고 훌륭한 제품을 생산 해오는 향토뿌리기업들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소중한 자산이다. 가업으로 이어져 오고있는 경북의 향토기업들을 소개한다. 양조장안에 우물… 미네랄 풍부한 맑은 물 늘 공급
누르스름한 빛깔에 단맛 적어 갈증 해소에도 딱
권시목 대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정겨운 존재”
전국에 현존하는 막걸리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된 술도가이자 막걸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영양양조장.
영양양조장은 최근 경상북도 100년 기업의 역사를 쓸 향토뿌리기업으로 인증됐다.
영양양조장은 1926년 일제시대 청주양조장으로 지어졌다가 해방 후부터 막걸리를 만들며 88년간 서민들의 애환이 담기 막걸리를 생산해오고 있다.
영양군청과 읍사무소 사이에 위치한 양조장 정문에는 `영양탁주합동관리회`라는 나무 현판이 걸려 있고 현관문에는 `전화6`이라는 작은 나무 푯말이 붙어있다.
영양군청 공보담당 박경해 계장은 `전화6`이라는 푯말에 대해 “일제시절 영양에 전화가 10대뿐이었어요. 그 열 대 중에서 이 양조장에 여섯 번째 전화기가 설치됐다는 뜻입니다. 관공서가 1번, 경찰서가 2번 등 관공서가 1번부터 5번까지 차지했고, 민간에서는 이 양조장이 첫 번째였죠. 영양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서열 6위`를 공식 인정을 받았을 만큼 술을 많이 팔았고 돈도 많이 벌어들였다.
`영양탁주합동` 권시목(67) 대표는 “이렇게 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관 옆 창문 앞에 자전거가 꽉 서 있었지! 세우면 (막걸리 실어서) 나가고 세우면 나가고. 술통을 달고 싣고 배달했죠”
영양은 예부터 막걸리 생산량이 많았으며 면마다 동마다 양조장이 있었다.
당시 담배와 고추의 고장이라 일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으며, 그 일꾼들이 몰리는 봄부터 가을 농번기는 막걸리 판매가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1960~70년대 7만에 이르던 인구가 현재 2만(1만8천여명)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빠져나가며 양조장도 하나씩 문을 닫았다.
이제 영양에 남은 술도가는 이곳 뿐이다.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지긴 했지만 `영양양조장` 건물은 아직도 튼튼하다.
88년의 세월에도 벽에 금하나 없을 정도다.
기둥은 압록강 적송인데 요즘 보기 드문 목재이고 손으로 쳐보면 돌처럼 단단하다.
벌레조차 먹지 못해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다.
지붕은 지진에도 끄덕 없을 정도의 트러스 구조이고 나무못만 쓴 것도 특이하다.
양조장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성기(도수를 맞추거나 감미를 하는 술 제조의 마지막 단계)원심분리기 등이 들어서 있고 옆에는 옛 우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맑은 물을 퍼내기 위해 양조장 내부에 우물을 판 것.
물이 차고 미네랄이 풍부하며 가뭄에도 물을 이용할 수 있어 우수한 막걸리 제조비법 중 하나인 셈이다.
영양 양조장의 압권은 누룩을 띄우는 발효실. 옛 양조 역사의 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곳에 들어서니 더운 날씨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벽과 천장이 두 겹에다 폭이 90㎝쯤 된다.
벽 사이에 왕겨를 채워 외부의 열기를 차단하고 발효실 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했다.
50년 가까운 경력의 권 대표는 “누룩을 빚어 술이 가장 맛있게 익는 적정온도인 22℃를 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영양양조장 막걸리 맛이 특별히 좋은 비결을 귀띔했다.
영양에서 유일하게 88년의 막걸리 맥을 묵묵히 잇고 있는 영양양조장.
현재 `영양생(生)막걸리`란 이름으로 팔리는 이 양조장 막걸리는 옛 시골 막걸리 맛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누르스름한 빛깔의 영양막걸리는 단맛이 그리 세지 않고 톡 쏘는 탄산이 별로 없고 묽은 편이다.
첫 입에 확 끌어당기지는 않지만 뙤약볕에서 일한 다음 갈증을 해소하기 알맞은 농부의 막걸리이다.
60·70대가 주 소비자인 영양막걸리는 옛 향수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어느 자리에선가 `막걸리는 착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자가 기억하는 착한 점은 두가지다.
우선, 저렴하기 때문에 착하다는 것.
막걸리는 동네 대포집에 가면 한 병에 1천500원이다.
소주·맥주와 경쟁하느라고 낮은 자세를 취하고 원래 서민들이 즐겨 마신 술이라 가격을 높이 책정하지도 않았으며 책정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막걸리는 도수가 낮아서 착하다는 것이다.
술손님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타격을 주지 않기에 착하다.
`착하다`는 말이 임의적이고 주관적이지만, 기자는 막걸리의 몇 가지 특징을 착하다는 말로 기억하고 있다.
막걸리를 반(半)식량이라 해 농주로 즐겨 마셨던 것도, 쌀의 영향성분을 알뜰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뒤에 춘궁기에 굶주릴 때에 양조장의 술지게미를 얻어먹으면서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던 것은 막걸리의 그 착한 특징 때문이 아닐까.
막걸리는 한 개인의 것도, 한 가문의 것도 아니다. 막걸리는 우리 동네의 술이다. 이 땅에서 나는 곡물로, 이 땅 위로 부는 바람 속의 곰팡이와, 이 땅에서 솟아나는 물로, 이 땅에서 사는 한국인이 오래도록 빚어 즐겨온 술이 막걸리다.
막걸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정겹고 착한 존재라는 권 대표의 말속에서 우리 전통 막걸리의 역사와 맛이 영양양조장에 오롯이 배어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영양/장유수기자
jang777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