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공연 나 자신 재점검 계기”
“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겠지만, 노래만큼은 어린 시절 기억을 살려 최선을 다해 부를게요. 앞으로도 끝이 없는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가수 문주란(64·사진)이 다음달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데뷔 45주년 기념 콘서트 `문주란 끝이 없는 길`을 연다. 지난 1966년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그는 그동안 `보슬비 오는 거리`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의 히트곡을 냈다. 엄밀히 따지면 올해는 데뷔 47주년이지만, 이제야 2년 전 미처 챙기지 못한 45주년을 기념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최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주란은 “지금은 `0점`에서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세종문화회관 공연 결과로 `여자 문주란`, `가수 문주란`을 재점검하고 싶다.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고 싶다”고 의의를 짚었다.
숱한 히트곡을 배출했지만, 스스로 `0점`이라고 박하게 평가하는 이유는 한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KBS `불후의 명곡` 문주란 편을 통해 간만의 TV 나들이를 했지만, 그는 주로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자신의 라이브 카페 무대를 통해 팬들을 만났다.
“`스스로 숨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신곡을 발표해도, 본의 아니게 밀려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제 이름 세 글자를 잊지 않고 라이브 카페까지 찾아오는 분들이 계세요. 조촐한 좌석이지만 라이브를 할 때는 참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데뷔 후 40년이 넘는 기간 대형 단독 콘서트를 가진 적이 없는 그가 대중예술인에게는 상징적 의미가 큰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열게 된 것은 신승호 MBC 전 국장과의 인연 때문.
“숨어서 조용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토토즐` `명랑운동회`를 하시고 정년 퇴임하신 신승호 국장이 라이브를 찾아오셨어요. 그분께서 `히트곡이 이리 많은데 왜 숨어서 지내느냐. 좀 나가서 문주란을 모르는 세대에게도 알려주라`고 하셨어요.”
사실 세종문화회관은 그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1972년 12월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 화재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것.
“1972년 시민회관 화재 당시 그곳에서 열린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 참석하고 있었어요. 2층 분장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기절 후 눈을 뜨니까 병원이었죠. 문주란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전인 14세 때 첫 무대를 가진 곳도 시민회관이었어요. 참 묘한 인연이죠.”
그는 다음 달로 다가온 콘서트를 두고 “세종문화회관은 가수라면 다들 한 번씩은 서고 싶은 무대”라며 “기분이 매우 좋다. 신인처럼 마음이 부풀어 있다”고 즐거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주란은 지난 1969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해 세간에 충격을 안겼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19세 때 자살을 시도해 보름 만에 눈을 떴다”며 “철이 들지 않았을 때, 너무나 행복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나 한다”며 `행복한 불행`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어 “연예계가 사실 굉장히 힘들고,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인`이라는 두 글자를 스스로 다듬어가려면 힘이 많이 든다.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참 많다”고 토로했다.
“연예인들의 그러한 사고가 날 때마다 슬프고, 안타까워요. 그런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요즘 인터넷 댓글 다는 것을 하찮게 생각하시지만, 돌을 던졌을 때 상대가 얼마나 아픈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문주란은 다음 달 세종문화회관 공연의 성황 여부에 따라 앞으로 전국 투어 등 본격적인 활동 재개도 고려하고 있다. 라이브 카페든 전국 투어든, 공연의 이름처럼 `끝이 없는` 가수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다.
그는 “조용필도 나와 같은 시대의 분인데, 그가 `헬로`를 가지고 나왔을 때 박수를 쳤다”며 “조용필의 성공을 보면서 나도 같이 덩달아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를 보고 용기가 생겼다”고도 말했다.
“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몸이 안 좋을 때도 두세곡을 부르다 보면 언제 아팠는지도 잊어버려요. 힘이 되고, 활력이 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