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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5-30 00:18 게재일 2013-05-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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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독서모임에서 강신주식 버전으로 두세 번 접했다. 그래도 부족해서 그림 곁든 해설서와 전공 학자들의 관련 글도 찾아 읽었다.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해설의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데다 저마다 자기 식 해설에 대한 자긍심마저 있으니 독자로서는 혼란스러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원래 고전 강독이란 게 첫 문구 하나만으로도 학자들끼리 논쟁할 만큼 범우주적 범위를 자랑한다. 그러니 일반 독자가 고전 해설서를 접하면서 느끼는 갑갑함은 당연지사이리라.

장자 사상의 기본은 제1편 `소요유(逍遙遊)`에 잘 나타나 있다. 소요유는 말 그대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노닐며 거닌다는 뜻이다. 목적지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저 한없이 한가한 행보를 할 뿐이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진정 자유로운 자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장자가 말하려 한 것은 궁극의 자유, 절대의 자유, 자유 너머의 자유였을 것이다. 인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인간을 규정하는 그 어떤 질서나 규범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여러 예시로 보여준다.

큰 가죽나무 한 그루를 보고 혜자가 말한다. 줄기는 울퉁불퉁하고 가지조차 구불구불해 쓸모없이 크기만 한 나무라고. 장자는 이렇게 대꾸한다. 쓸모없이 큰 나무에 대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없는 너른 들판, 큰 나무 곁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그 아래 누울 생각은 왜 하지 않느냐고. 목재로서 쓰임새 없다고, 폐가 되거나 해를 끼치는 건 아니라고.

실용의 가치로만 따진다면 둥치 굵고, 가지 곧은 나무보다 좋은 건 없다. 하지만 그건 장인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다르게 본다면 제멋대로 자란 나무야말로 `쓸모있는`것이 될 수 있다. 좋은 목재로 거듭나는 게 큰 나무의 가장 좋은 쓰임새라는 생각이야말로 한정적 견해이다. 소요하는 인간의 조화로운 파트너가 되는 일도 가죽나무의 나쁘지 않은 쓰임새가 될 수 있다. 주어진 합의나 정해진 틀에 안주하지 않고 궁극을 향해 소요하는 자유의 참맛을 깨치는 장자는 읽을수록 매혹적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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