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을 상대로 도서관에서 `위대한 개츠비` 독서 및 영화 토론수업을 했다. 가치관이나 자기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는 청소년 초입 시기라 접근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원작 번역 소설도 그들에겐 버거울 수 있는데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신작 영화는 나이 제한에 걸려 개봉관에서 볼 수도 없었다. 책은 축약본을 읽어도 좋다고 타협하고, 영화는 디브이디를 활용하기로 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라 그런지 기존 영화도 두 편이나 있었다. 그 중 원작에 충실한 로버트 마코비츠 감독 것을 택했다.
책과 영화를 접한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개츠비가 답답해죽겠단다. 반어법이라면 몰라도 제목대로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인정하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은밀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그토록 빠른 부를 축적한 것도 다른 부도덕한 등장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단다. 사랑받을 가치조차 없는 한 여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다만 돈으로라도 여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개츠비는 뒷모습까지 순수한 사랑을 한 사람이란다.
상처나 파멸과 친구하는 건 누군가의 뒷모습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본 앞모습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제 지고지순함으로 사랑하는 이의 약점마저 끌어안은 개츠비야말로 갑갑하지만 위대한 남자였다. 그는 제 뒷모습의 아름다움을 넘어 심성마저 다사로운 사람이었다. 전상보다 후상, 후상보다는 심상이라 했다. 개츠비가 전상과 후상을 넘어 여운을 남기는 건 그 마음결 때문이다. 보이는 앞, 안 보이는 뒤보다 더 중요한 건 속 깊은 성정이라는 걸 개츠비는 씁쓸한 죽음으로 증명한 셈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