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의 일이지만 형산강의 발원지를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몇 명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백운산을 찾아갔다가 큰골샘을 찾지도 못하고 돌아 왔다. 또 다른 날엔 경주 아화를 지나 도리 쪽으로 대천을 따라 가보았지만 그 쪽 발원지도 확인하진 못했다. 물길이 이어졌지만 수목이 우거져 길이 막혔던 것이다. 강의 이름이 된 형산과 제산을 올라보고, 경주 석장리 암각화도 찾아가보고, 원류를 따라 가면서 사진을 찍고 지도를 펴놓고 물길을 가늠해 보는 등 제법 답사의 흉내를 내었던 것인데 결국 지쳐서 그만두게 되었다.
강의 생태와 문화, 역사나 지리적인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간접체험 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원류만 찾아 발원지를 가보는 일인데도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지류들을 다 탐방하고, 그 지리와 생태 그리고 문화적인 것들을 저작물로 남기기까지 발품과 시간 노력은 어설프게 시작해서는 아예 될 일이 아니었다. 그 뒤 포항 지역사회 연구소에서 2002년 펴낸`형산강`이란 책과 포항문학이 다룬 형산강 정도로 만족하고, 직접 찍어둔 사진과 글들을 갈무리한 작은 페이지를 3년간 유지하다가 그것도 별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그만 두었다. 그 때 축적해둔 변변찮은 사진과 글들이 시디롬에 담겨 어둠 속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다시 꺼내들고 생각에 잠겼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나 많은 지류가 있는데, 그것을 다 비켜 원류를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발원지를 찾아내려면 용천수를 찾아 내야한다. 가장 먼 곳, 그러니까 하류까지 가장 길게 측정되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지표수를 발원지라고 말한다. 또한 한강의 검룡소, 낙동강의 황지처럼 365일 마르지 않고 용천수로 존재하는 것이 발원지의 또 하나의 조건이라고 한다. 형산강의 발원지는 두 곳으로 서로 이견이 있다. 복안천을 원류로 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의 백운산 큰골샘이 되고, 대천을 원류로 보면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의 인내산 인출샘이 발원지가 된다. 복안천(伏安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의 백운산 큰골샘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국도 제35호선을 따라 흐르다가 경주시 내남면으로 흘러 대천과 만난다. 일제 강점기 때는 형산강의 본류로 여겨졌다. 대천(大川)은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의 인내산 인출샘 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면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흐름을 바꾸고 건천읍을 거쳐 고천과 합류하고, 경주시 탑동에서 복안천과 만나 흐른다. 이후에 형산강은 큰 물줄기가 되어서 남천과 북천, 소현천과 신당천, 사방천, 칠평천, 기계천, 왕신천, 자명천등을 만나면서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강은 공간 속을 흐르고 있지만 시간과 역사속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몸속으로도 흐른다. 나는 하류의 마을 연일에서 태어나 지금도 연일에서 살고 있지만 경주 남천가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 옛날 연일 부조시장에서 그의 선조들이 고기를 거두어 가고, 하류에서 잡은 조개들을 반찬으로 삼았을 테니 그의 몸 속에도 형산강은 샛강을 내고 있는 것일텐데. 지금도 바다로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가서 발원하고 있다. 내 몸 속에도 강은 샛강을 내고 흐르며 내가 흘린 것들은 다시 강으로 흘러든다. 그런 것 말고도 신라의 옛 수도였던 경주에서 가장 첨단의 현대적인 산업도시 포항으로 흐르는 형산강은 사람들 속에 무수한 의미를 흘려주고 있다. 그 속에 삶의 애환과 전란의 아픔과 피, 홍수가 만들어낸 죽음위의 또 다른 삶과 생명들이 계속 흐르고 있다.
나의 초보적인 형산강 저작물을 담은 씨디롬의 먼지를 털어내며, 강에 대한 생각들이며 의미들을 다시 어둠 속에 쟁여놓는다. 누구든지 형산강의 그 큰 흐름을 베껴서 아름다운 저작물로 만들어 맑은 거울처럼 우리 앞에 놓아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것이야 말로 형산강과 함께 샛강인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