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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없이 담백하게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5-14 00:03 게재일 2013-05-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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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건이 터진다. 실상이 공개된다.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그것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천리를 달린다. 피해자는 말이 없고 뒤늦게 나타난 가해자는 억울하다며 남 탓하기 바쁘다. 치졸한 응원군까지 얻으면 자신의 안위가 걱정된 가해자는 진솔한 사과 대신 구질구질한 변명을 택하고 만다.

아인슈타인은 인류 역사에 빛나는 논문 몇 편으로 과학계의 지존이 되었다. 에너지와 질량과 빛의 관계를 도식화한 그의 방정식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질량과 에너지의 상호 관계를 말하는 이 식은 쉽게 말해 물질에 갇혀 있는 에너지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균 체격의 성인은 대형 수소 폭탄 서른 개 정도가 터질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다만 그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란다.

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내용면에서 가장 빼어난 논문이기도 했지만 형식면에서도 남달랐다. 각주나 인용문이 없었고, 수식도 거의 없었다. 자신의 연구에 영향을 주었거나 앞선 연구에 빚진 논문도 없었다. 다만 직장 동료의 도움만 있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생각만으로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성과를 이뤄냈다.

어떤 이론에 각종 주석이 달리고 인용문이 너덜너덜하게 붙는 건 그만큼 자신의 생각이 독자적이지 못하고 창의적이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말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싶거나 자신의 생각을 인정받고 싶을 때 선각자의 말들을 빌려온다. 검증받은 사람들의 말에 슬쩍 기대어 제 말의 부족함을 채우려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자신보다 더 나은 객관적 자료는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논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각주 없는 삶일수록 좋다. 모자라도 설명하지 않으며, 부족해도 갈구하지 않으며, 불편해도 불평하지 않는 삶.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임을 깔끔한 논문처럼 증명하는 삶. 특히 잘못했을 땐 변명 따위의 각주보단 진솔하고도 담백한 본문이 매력적인 그런 삶을 꿈꾼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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