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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5-06 00:07 게재일 2013-05-0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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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번역해서 안착한 제목은 원작이 지닌 본래의 뜻을 왜곡하는데 일조한다.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그런 의미에서 살짝 아쉽다. 개츠비의 일생을 쫓다보면 애초에 기대한 위대한 개츠비는 어디에도 없다. 사나이 개츠비의 허망한 순애보만 있을 뿐이다. 그 짠함을 일러 반어법으로 위대하다고 말해도 나쁘지는 않지만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내게 개츠비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바보 같은 사람, 말리고 싶은 사람, 친구이고 싶은 사람 등으로 각인된다. 하기야 이런 걸 통칭할 때 `위대한 사람`보다 더 나은 것도 없으니 최선의 번역일 수도 있겠다.

재즈 유행, 도덕 해이, 불법 난무, 주가 폭등. 1920년대 초반의 이런 뉴욕 분위기를 이해해야만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와 세련미와 교양이 전수된 롱아일랜드 해협의 이스트에그는 퇴폐적이고 타락한 당시 사회의 상징 코드로 봐도 좋다. 1차 세계대전 직후 꿈조차 버거운 젊은이들은 파티와 술, 음악과 자동차 등으로 대변되는 `재즈 시대`를 살았다. 돈과 환락의 시대였다.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은 그 시절,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개츠비는 사랑을 위해 물질적 성공을 거두고야 만다.

물질적 풍요 앞에서 사랑은 쉽게 무너지고, 허영심으로 제 턱 끝을 장식하는 사람들은 순정을 백 번이라도 배반한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 사랑을 제 희생으로 마감함으로써 허무에 이르는 개츠비도 있고, 그것을 안타까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닉 캐러웨이 같은 사람 또한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근본은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 사랑도 물질도 소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조급한 오늘날 내레이터 닉 캐러웨이가 되어 어느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 보라. 허영심으로 더욱 예쁜 데이지를 못 잊어 연신 술잔을 기울이는 착한 사람 개츠비를 만날 수 있으리니. 누군들 개츠비를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으리. 끝내 버리지 않은 순도 높은 꿈과 환상만으로도 개츠비는 위대하구나.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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