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의 변별력이 떨어지면 사실상 그 부작용은 대학 측으로 다시 돌아온다. 기업이나 대학원에서 신입사원이나 대학원생을 선발할때 아예 평점을 무시하거나 너무 높은 평점을 요구하게 되면 그 부작용은 대학의 책임이다. 평점의 인플레는 상호 악순환의 결과이다. 기업이 높은 평점을 요구하면 더 높은 학점을 줘야 하고, 더높은 평점을 보면서 기업은 그보다 더 높은 평점을 요구하게 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미국의 대학 평점은 변별력이 있기로 유명하다. 교수들은 D, F 학점을 과감하게 준다. 3.0 정도면 학과평균을 상회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변별력은 학생을 받아들이는 기업이나 대학원에게 신뢰감을 준다. 반면, 한국학생들이 미국대학원에 지원서를 내면 한국대학 평점을 인정하지 않는데, 한국대학의 평점인플레에 원인이 있다.
필자가 미국 대학교수 시절 한 학생과 부모가 찾아온 적이 있다. 울면서 사정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F를 받은 학점을 고쳐야만 졸업이 가능하다는 읍소였다. 다시 시험답안지를 채점하고,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학과의 승인을 받아서 구제를 해줬지만 미국대학의 엄격한 평점, 학점관리의 면모를 보는 사건이었다.
한국대학의 평점이 변별력이 떨어진 원인에는 정부, 기업, 대학의 공통적인 책임이 있다. 우선 정부가 이공계특별장학금 자격을 높은 평점으로 책정한 데 있다. 이 제도 시행 후 우수대학, 특히 이공계의 평점 인플레가 가속화됐다. 대학에 상관없이 일괄적인 평점을 책정한 것이 문제가 된것이다. 기업들도 일정한 평점을 정해 지원자격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대학에서는 평점을 잘 줘야 학생들이 취직할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각 대학의 대학원들도 일괄적으로 각대학별로 평점을 정해 그 이하면 일괄 탈락시키는 경직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 이런 경직된 사고를 바꿔야 한다. 정부는 탄력적 평점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수준별 평점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든가 또는 평점이 장학생 선발에 차지하는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또한 각 대학에 평점의 커브를 적용해 무조건적인 평점상향을 막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기업도 다양한 스펙을 고려해 사원을 선발해야 한다. 평점은 중요한 자료이긴 하지만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다.
대학원은 학생선발에서 면접이나 시험의 기능을 좀더 강화해야 한다. 일괄적인 평점을 적용하지 말고 탄력적인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사실 평점인플레 현상은 극심한 취업경쟁이 그 원인일 수 있다. 취업환경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또 다양한 스펙을 가진 졸업생들이 취업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취업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어제 내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가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사고가 요즈음 정부의 화두인 `창조경제`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