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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도 산에 오를 수 있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4-23 00:16 게재일 2013-04-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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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컨스 굿윈의 말은 매우 빨랐다. 우연히 인터넷으로 그녀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번역 자막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눌변인 경우가 많다는 속설은 그녀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광풍처럼 몰아치기만 한 언변에 유머와 재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호의적인 청중들의 웃음소리를 한 호흡 쉬어가는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기만 했다. 성급한 내레이션, 그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굿윈은 링컨 연구자의 권위자이다. 10년 동안 링컨에 관한 연구와 자료 수집으로 한 권의 책을 집대성했다. 팔백 페이지가 넘는 `권력의 조건`은 그녀의 링컨에 대한 오롯한 헌사이다. 책 속의 링컨도 위대하고, 책을 쓴 그녀도 대단하다. 한 사람의 집념은 여러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정치가로서의 링컨이 그러하고, 글쓴이로서 굿윈 역시 그러하다.

방대한 내용 안에서 그녀가 링컨을 가장 잘 살린 대목은 정치적인 면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들에서였다. 링컨의 강점은 적들도 내 편으로 만드는 건실한 가치관이었다. 때로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더러는 해돋이 같은 미소로 불편한 정적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권모술수나 이해타산이 아니라 건전하고도 도덕적인 접근법이었다. 유능한 라이벌들을 내각에 등용시키는가 하면, 뛰어난 화술과 친절한 마음씨로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사사로운 비난과 웬만한 모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우정을 고수했고, 동료들의 실수마저 끌어안았다. 자기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던 링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도 링컨만큼의 존경을 받을만하다. 링컨의 정치적, 사적 행보는 바지런한 작가의 발품과 손품에 의해 정치적 욕망과 섬세한 감성을 지닌 인간적 신뢰감으로 변주된다. 이런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라면, 즉 링컨과 굿윈의 안내라면 배 타고도 능히 원하는 산에 오를 수 있겠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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