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는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꽃이 되었다. 잎은 낮게 깔리고, 줄기는 곧게 뻗고, 꽃받침은 둥근 꽃 아래 숨어 있다. 꽃과 주변의 경계가 뚜렷해 깨끗하게 피고 진다. 꽃과 잎과 꽃받침이 마구 뒤섞여 너저분한 인상을 주는 팬지 같은 봄꽃에 비해 깔끔하고 소담스럽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들고 남`의 경계가 확실하다. 잎은 잎이요, 꽃은 꽃인 채로 제 소박함을 드러내는 꽃이 데이지다.
좋아하는 꽃이다 보니 위대한 개츠비의 마음을 앗아간 못된 여주인공 이름이 데이지인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곤 했다. 꽃에 얽힌 전설 때문에 피츠 제럴드는 데이지를 주인공 이름으로 차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숲의 님프인 유부녀 베리디스는 오매불망 그녀만을 원하던 과수원의 신과 남편 사이에서 방황했다.`차라리 꽃이나 되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면.` 하고 바랐는데, 소원대로 호숫가에서 데이지꽃으로 피어났다. 으뜸 미녀가 환생한 꽃이니 데이지의 꽃말이 `미인`인 것은 당연하겠다. 또, 전쟁미망인이 된 여자가 유복자인 아들마저 병으로 잃게 되자 소녀들이 `데이지의 노래`를 부르며 꽃으로 위로해줬다는 전설도 있다.
두 전설 모두 기품과 비장미가 있으면서도 담백하고 깔끔한 데이지의 정서와 어울린다. 뚜렷한 경계가 있으면서 소박한 기품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 안에서 이상화된 그 데이지는 잠시 접어두고, 데이지의 꽃말에 `희망과 평화`도 있다니 그 말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이상이든 위안이든 어쨌거나 나는 봄이면 데이지를 보러 꽃집으로 달려간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