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은 제목부터 관심을 끄는 영화였다. 아Q정전, 아비정전에서처럼 `정전`(正傳)은 `이야기` 쯤이 되겠다. 아비정전은 영어 제목에 와서야 제대로 빛을 발한다. Days of Being Wild라니. 내친 김에 프랑스 제목도 찾아 본 적이 있다. 프랑스판 DVD 제목은 Nos annees sauvages이다. 의미는 영어와 같지만 오감이 훨씬 열리는 느낌이랄까. 중화권의 아비정전 제목이 왠지 딱딱한 문어체라면, 서구식 제목은 구어체이면서도 날 것의 냄새이다. `야생의 나날`이라니!
상처투성이 인간은 사랑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커다란 우물 같은 공허를 안기기 마련이다. `발 없는 새가 있다지. 날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리는데, 그때가 죽을 때지.` 아비의 이 독백을 떠올릴 때마다 발 없는 새의 휴식처가 `바람`이었다는 것이 못내 걸리곤 했다. 공허함의 정점에서 내딛는 지상의 발자국이 죽음이라니. 이 기막힌 메타포를 실험하기 위해 장국영은 서둘러 길 떠났나 보다.
아비가 된 장국영은 천국의 꽃밭을 여행 중이고, 상처만 얻은 숱한 수리진(장만옥)은 이렇게 남아 원망 같은 벚꽃을 맞는다. 웬만하면 4월엔 뒤돌아보지 마라. 야생의 나날에 대한 기억의 회로 때문에 슬픔 많은 어깨들, 벚꽃 아래 울고 있으리니. 당신 또한 거기 그렇게 울고 있을 것이기에.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