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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락의 키치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4-01 00:16 게재일 2013-04-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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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Kitsch)는 한마디로 `저속함`을 말한다. 그 말의 본래적 태생을 떠나, 밀란 쿤데라 이후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가짜의 태도`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쿤데라 식으로 이해하자면 키치는 `싸구려 잣대로 공감대를 유도하는 유치한 놀음이자, 우연하고 당위적인 실체를 위선적인 미적 가치로 환원시키려는 모든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인들과 벚꽃놀이를 간다. 창밖 스치는 모든 것들은 봄빛에 조화롭다. 꽃과 나무들이 풍기는 시각적 향연, 들판에 솟구치는 대지와 공기 냄새, 이런 기대감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키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 백년 넘은 아름드리 꽃길에 들어서는 순간, 흐드러진 꽃가지가 아니라, 나무 사이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좌판대의 물결이 시야를 압도한다. 멀리서 바라봤던 벚꽃은 환상이나 거짓의 풍경으로 밀려나고, 가까운 좌판의 물결은 생존의 진실이 되어 앞을 가린다. 일차적 키치의 현장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그치면 키치에 대한 쿤데라 식의 완전한 정의가 될 수 없다. 쿤데라는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야말로 키치라고 단언했으므로. 우리식의 정서적 친밀감이 서린 그 행락문화는 비록 관찰자의 피로와 염증을 수반하더라도 그 자체가 키치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풍경들을 보면서도 흐드러진 봄꽃 잘 봤다고, 역시 자연은 위대하고 경이롭더라고, 제대로 맛보지 못한 자연을 과장해서 전한다면 그것이 곧 쿤데라 식의 키치이다.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향연을 즐기려니 온갖 물리적 야단법석이 좁은 땅 안에서 자행된다. 자칫 꽃구경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스트레스 해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해마다 꽃구경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염결한 생존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똥을 수반한다는 저릿한 스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오래된 절집 꽃구경 도중, 텃밭에서 피어오르는 똥 냄새야말로 삶의 근원적 속성임을 깨치게 되는 것. 키치로 전락하기 직전의 그 찰나적 짜릿함을 위해서 봄나들이는 필요하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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