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사람 뽑기 방식이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해줄 문서 하나를 위해 온몸과 마음을 쏟는다. 학문적 성과를 위해 대학원을 가고, 영어 공인 점수를 높이기 위해 학원을 드나들며, 그럴듯한 현장 스펙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 모든 것들은 문서화된 내 자료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다.
졸업반인 딸아이도 자기소개서 준비 때문에 오는 봄이 부담스럽단다.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부쩍 기숙사에서 집으로 오는 주기가 당겨졌다. 집밥으로 충전을 하고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젊은이들의 하루를 보면서 자기소개나 이력만큼 허울 좋은 겉치레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봉사 단체에서 한 청년에게 시쳇말로 꽂혔던 적이 있다. 갓 성인의 문턱을 넘은 앳된 그는 재바른 듯 침착한데다 야무지고 상냥했다. 누구나 곁에 두고 싶어했다. 신문을 나르고, 차를 타고, 편지를 정리하는 단순한 봉사를 하는 것뿐인데도 무슨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처럼 성실하게 임했다. 작고 섬세한 행동으로 신선한 주의를 끄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력이 될 정도였다. 문서화 되지 않은 진정성으로 자기증명을 해보이는 것이었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가 한 사람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 섬세한 몸짓 하나가 훨씬 많은 이력을 보여준다. 진실로 믿을 만한 이력서는 그런 것들인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한 채 살아간다. 그 견고한 이력이 무시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풍랑 앞에서, 제 이력서를 채울 스펙을 위해 내 딸 네 딸 할 것 없이 그들은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