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마트로시카 속 비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3-19 00:17 게재일 2013-03-19 19면
스크랩버튼
외적 인격 즉 페르소나의 긍정성을 옹호한다. 천성이 곱고 바른 사람들이야 겉과 속이 같으니 가면 쓸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오감이 발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상황에 따라 적당한 가면을 쓰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내면의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면 그건 잘못 없는 타인에게 무례한 일이고,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학부모 모임에서 여중생 딸의 고민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었다. 유독 한 아이가 `교복 치마를 왜 그렇게 길게 입어? 필기는 왜 그렇게 꼼꼼하게 해? 체육 시간에 뛰는 모습 진짜 웃겼어.` 이런 말로 딸에게 스트레스를 준단다. 누가 봐도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생에 대한 시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중2병`이라는 게 있다. 사춘기 또래가 지닐 수 있는 심리 상태의 한 유형인데, 한마디로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그것은 나보다 잘 난 것에 대한 시샘과 피해의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악과 허영심을 동반한다. 한데 그 중2병은 한 때로 끝나지 않고 성인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두 친구가 각자 회사를 차렸지만 하나는 승승장구하고 다른 한 친구는 문을 닫았다. 실패한 친구가 찾아가 성공 비결을 물었다. 친구는 러시아 목각 인형인 마트로시카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 답이 있다고 했다. 믿는 둥 마는 둥 차례로 다섯 개의 작은 인형을 꺼냈고 가장 작은 마지막 인형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성공한 이유는 항상 나보다 큰 사람을 곁에 뒀기 때문이야.`

제 그릇 작은 줄은 모르고 타인의 멀쩡한 그릇을 탓하는 건 중2병만도 못하다. 나보다 큰 사람은 도처에 널렸다. 어딜 가나 그 큰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곁에 두려는 노력만으로도 일상은 풍성해진다. 마트로시카 다섯 개 인형이 뚜껑을 열수록 점점 작아지고, 가장 작은 것 안에 답이 있는 건 제 그릇 크기를 항상 되새기라는 깊은 뜻이 숨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